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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양식은 공동체를 만들고 음식은 외로움을 만든다.
작성자김 글로리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18 조회수1,56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2년 다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양식은 공동체를 만들고 음식은 외로움을 만든다>

 

 

 

 

복음: 루카 9,11ㄴ-17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십니다. 이 살과 피는 탈출기의 만나와 바위에서 흘러나온 물로 상징됩니다. 그래서 오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모세처럼 광야에서 헤매는 백성을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십니다. 이 빵을 먹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체성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밝혀집니다. 먹는 것은 이것과 직결됩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102회에 9년째 구토하는 금쪽이의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금쪽이는 14세 외동아들입니다. 머리가 좋은 아이였지만 구토증세를 달고 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울렁거리고 메스껍고 복통이 나며 이내 구역질을 합니다. 응급실에 가서 링겔을 맞아도 계속 구토가 나옵니다. 이 증상이 9년째 지속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금쪽이는 건강문제로 등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쪽이는 초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중학교 복학은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건강과 학업이 동시에 걱정됩니다. 금쪽이는 제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사는 게 지옥 같다고 합니다. 

 

 

    금쪽이의 증상은 6살 때부터 장염을 앓은 후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을 전전하며 괜찮아지는가 싶었는데 11살쯤 다시 증상이 심해져 시골 학교로 전학을 하였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고 8번이나 응급실로 실려 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금쪽이는 대인관계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말을 할 때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상대가 말하는 단어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가 구토를 하는 이유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빠가 글씨 연습을 하자며 앉히자 숨이 거칠어지고 트림이 나왔고 구토 전조 증상까지 보였습니다. 금쪽이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모의 강요에 학교가 싫어졌습니다. 남들과 비교되는 게 싫어졌기 때문입니다. 

 

 

    오은영 박사는 ‘공부 멈춤 선언’을 하라고 부모에게 말합니다. 일단 아이가 살아야 하니 그렇습니다. 부모가 주는 ‘밥’ 안에는 부모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부모는 밥을 주며 자기 뜻을 아이에게 강요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뜻이 버거울 때는 부모가 주는 음식을 거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뜻이 부담스러워 뜻을 거부하니 몸이 음식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병은 몸과 직결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양식은 어떤 뜻이 들어있을까요? 공부를 잘하고 세상에서 성공하라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그 뜻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말합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루카 9,12)

 

 

    황량한 곳은 말 그대로 하면 사막처럼 텅 빈 곳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 텅 빈 곳을 당신 성체와 성혈로 가득 찬 곳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하셨을까요?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루카 9,14-17)

 

 

    사막도 배불리 먹을 것이 있고 그 음식을 함께 먹을 공동체가 있다면 더는 황량한 곳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바뀝니다. 이를 위해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부모의 양식을 먹는 자녀들은 서로 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향으로 양식을 내어줍니다. 한 부모의 양식을 나누어 먹는 것 때문에 형제들은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뜻이 잘못되었을 경우는 위 금쪽이처럼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사회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은표 씨 가족의 지웅이는 동생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동생을 잘 보살핍니다. 그 이유는 부모가 그러기를 바라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모의 음식을 거부한다면 동생과의 사이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 부모가 주는 양식 안에는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분명 부모가 주는 음식은 사회성과 직결됩니다. 어쩌면 그 사회성이 양식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24회에도 식음을 전폐한 아이가 나옵니다. 음식을 먹으려고는 하지만 삼킬 수가 없습니다. 머리카락이 목에 꽉 찬 것 같다고 하며 음식을 넘기지 못합니다. 이 금쪽이도 수액으로 연명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아보면 됩니다. 언제부터 그랬나 살펴보니 엄마가 직장을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엄마가 직장을 나간다고 다 아이들이 식음을 전폐할까요? 엄마가 일을 나가는 것이 아이에게 그만큼 커다란 충격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자 금쪽이는 사실 남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아이가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로부터 양식을 충분히 먹지 못하면 결국엔 동생과의 관계도 원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고, 또 동생과도 원만해지려면 아이는 음식이 아닌 양식을 더 먹어야 합니다. 음식을 토하며 양식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식은 부모의 사랑이고 부모의 사랑은 곧 형제간의 사랑을 지향합니다. 

 

 

    이것으로 볼 때 성체를 영하며 성당에서 형제들과의 친교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한 부모가 주는 음식을 먹으며 형제간의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절로 한 부모의 양식을 먹으면 형제간의 친교가 형성됩니다. 

 

 

    따라서 미사 할 때 형제간의 친교로 이어지지 않는 성체는 진정한 양식이 아니고 음식일 뿐입니다. 음식을 먹기 때문에 친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미사만 하고 집에 돌아가고 친교 공동체, 봉사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 성체성사를 대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서로 사랑하는 친교의 무리가 형성되지 않는 성체성사는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냉담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냉담은 성체를 영하지 않음이 아니라 그 성체를 영하면서도 효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이 정도는 되지 않더라도 하느님 자녀들끼리 서로 친교를 맺는 형제 공동체는 만들어져야 합니다. 양식은 곧 친교 공동체를 지향함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https://youtu.be/25JQgeNzUe0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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