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19 조회수1,268 추천수4 반대(0) 신고

220619.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루카 9, 11ㄴ-17(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의 신비를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이 신비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내주는 신비임과 동시에 그분의 성체성혈을 먹고 마시는 우리 자신에 관한 신비이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정체를 묻는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루카 9,9)라는 헤로데의 질문과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라는 베드로의 고백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 신원을 밝혀줍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신원과 성체성사와 관련하여, 제자인 우리가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군중을 돌려보내시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 

 

이에, 그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고 있는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자리잡게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촉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셨습니다.”(루카 9,16). 

 

오늘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제자들의 사명”을 보고자 합니다. 아라비아의 신비가 사디가 전한 우화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깊은 숲 속을 걷던 한 수행자가 네 다리가 전부 없는 여우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 여우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나서, 호랑이 한 마리가 포획물을 입에 물고 와 자기 배를 채우고 나더니, 나머지를 여우를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다음 날도 신은 같은 방식으로 여우가 굶주리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수행자는 깨달았다는 듯이,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구석에 가만히 앉아 신의 사랑만 믿으면, 내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시겠지?” 그는 그대로 몇 날 며칠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 죽어갈 지경이 되었을 때, 그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그릇된 길로 들어선 자여, 진실을 향해 눈을 뜨라! 내가 너를 이 자리로 이끈 것은 하릴없는 여우 흉내나 내라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를 본받으라는 것이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호랑이에게 포획물을 얻을 힘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이미 그러할 힘을 주셨습니다. 어느 날, 한 수도자는 벌거벗고 굶주린 채로 길거리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는 화가 치밀어서 하느님을 성토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왜 두고만 보십니까? 왜 아무 것도 안 하시는 겁니까?”하느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불현듯 대답하셨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했다니, 너를 만들었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로부터 생명의 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리 없는 여우를 보내주셨고, 굶주린 소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하시며, 또 “빵을 떼어 주시며, 나누어 주어라.”(루카 9,16)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몸”은 인간관계를,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로 당신의 생명을 주시어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신원입니다.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신원입니다. 이 사랑은 오늘 <제2독서>에서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주시면서 하신 말씀, “이는 너희를 위한 나의 몸이다.”(1코린 11,24)라는 말씀에서, “위하여”라는 표현으로 드러납니다. 또한 이 표현은 마태오(26,28), 마르코(14,24), 루카복음(22,20)의 ‘성찬례 제정’ 장면에서 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도 표현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후에, 빵을 들고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내어줄 몸”이라고, 또 잔을 들고서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흘릴 피”라고 축성할 것입니다. 그러니 성체성사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현존’의 신비를 재생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당신의 최고의 사랑을 쏟으시는 순간에 ‘봉헌’하신 생명의 신비를 재현시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삶”,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체성혈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어줌”, “떼어 나누어줌”, 이는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눈물겨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역시 자신을 “떼어줌”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 자신을‘떼어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아멘. 하오니 주님! 제 몸과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차지 하지 말게 하시고 찢어지고 나누어지고 쪼개지고 부수어져, 타인 안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향하여 계시듯, 제가 늘 타인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제 자신을 떼어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9,13) 

 

주님! 먹지 않고서는 못 살면서도 자신은 먹히지 않으려 하는 자애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소서. 제 몸과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차지 하지 말게 하시고 찢어지고 나누어지고 쪼개지고 부수어져, 타인 안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향하여 계시듯, 제가 늘 타인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제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이 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