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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21 조회수1,695 추천수8 반대(0)

오늘은 미주가톨릭평화신문 65일자 기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는 김평만 신부님이 연재하는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이고 다른 하나는 이영우 신부님의 고시원 이야기입니다. 김평만 신부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구약성경 곳곳에서 하느님을 고아와 과부, 당시 사회적인 약자들의 보호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주신다. 힘없는 이, 당신께 몸을 맡기고 당신께서는 고아에게 친히 보호자가 되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당시 고대사회의 보편적인 신관에서 벗어난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당시 신은 그 사회의 지배층, 즉 왕과 귀족, 사제 등 힘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사회적 약자 보호 정신에서 한 걸을 더 나아가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이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섯 부류의 사회적 약자, 즉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 집 없이 떠도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언급하십니다. 구약의 정신과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의 특별한 연대를 추구했던 전통에 따라 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중단 없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께서는 왜 이토록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 각자가 실천해야 할 그리고 우리 사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우선적인 사명으로 강조할까요? 그 이유는 약자들을 돌보는 일이 하느님의 일(Opus Dei)', 즉 하느님께서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두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동창 신부 중에 고시원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지내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고시원에서 가난한 이들과 사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빈민사목 원칙 중 하나도 현장에서 사는 겁니다. 제가 여기 살아야죠. 공동사제관에서 출퇴근하면 저도 여기 오는 게 일이 되잖아요. 여기 살아야 제가 이분들을 알 수 있어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처럼 동창 신부님도 편안한 곳을 떠나서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교정사목을 할 때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출소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는 빛의 사람들이라는 집을 지어서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 할 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출소자들을 위한 은행을 만들어서 저렴한 이자로 대출해 주기도 했습니다. 동창신부님은 이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저희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는 아닙니다. 같이 살면서 함께 한다는 것이 교회가 함께 있고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작은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제가 잊고 있던 것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잊고 있던 것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외롭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화려한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국과 맺은 동맹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경청할 수 있다면 그래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하나 될 수 있다면 교회는 그 행위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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