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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23 조회수1,031 추천수2 반대(0) 신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이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시작하여 점차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1독서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6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3 그들을 민족들에게서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몸소 당신 양 떼를 먹이시고 그들을 누워 쉬게 하시리라고 한다.

 

 

 

 

 

 

 

 

 

 

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5-11
형제 여러분,
5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5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그들을 절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데 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속에 현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6

본문에서는 아직정해진 때에앞에 다시 나온다. 이러한 반복은 우리의 지속적 연약성을 강조한다.

 

불경한 자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흠숭하지 않고 의화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7

의인을 위해 죽을 사람이 거의 없다면 그리스도가 심지어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바치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은혜나 사랑을 베푸는 은인과 같은 착한 사람을 위해 생명을 바칠 사람의 수는 의인의 경우보다는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착한 사람뿐 아니라 하느님을 거절하는 자들을 위해도 당신 생명을 바치셨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무상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10

하느님 아들의 속죄적 죽음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를 얻은 우리는 아들의 부활 생명에 참여할 것이다.

 

11

2.3절 참조.

 

 

 

 

 

 

 

 

복음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3-7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3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

비유의 상황묘사는 루카의 가필. 사실 1-2절은 5,29-30을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또한 3절의 그러자 ...함께 이야기하시다”.“이 비유를 말씀하시다역시 루카의 전형적 문제다. 이처럼 루카가 1-3절 전부를 형성. 첨가했지만, 그는 본디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발설하신 상황을 정확히 도로 밝혀 내었다!

 

4-7절과 마태 18,12-14를 비교하여 각각 편집요솔ㄹ 제시하고 나면 비유의 어록 원형을 복구시킬 수 있는데.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는다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버려둔 체 잃은 것을 찾아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가 그것을 되찾게 되면 자기 어깨에 맵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그는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것을 두고 더 기뻐 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잃었다가 되찾은 이를 두고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그분은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곤 하셨다. 그 때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그분의 처신을 비난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위의 비유를 답변하셨다. 그러니 일종의 자기변호인 셈이다. 아울러 예수님의 처신은 하느님의 처신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것이다.

 

6

6절은 루카의 가필이리라. 그 까닭인즉 병행문 마태 18,12-14에는 6절이 없을뿐더러 루카의 애용어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관복음 가운데 카애11.19를 제외하면 오지 루카복음에만 무려 열다섯 번이나 나온다. “이웃은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 9/8을 제외하면 루카 14.12: 15,6.9에만 나온다. “불러모으고는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 15.16을 제외하면 루카 9.1; 15.6.6; 21.13; 사도 5.21; 10.24; 28.17에 만 나온다. “함께 기뻐하다는 네 복음서 가운데 루카 1.58: 15.6.9에만 나온다.

 

7

7절은 대체로 루카가 어록에 수록된 마태 18.13을 옮겨쓰면서 명사 회개”, 동사 회개하다를 덧붙인 것이다. 명사 회개는 네 복음서 가운데 마르 1.4: 마태오 8.8.11를 제외하면 오직 루카 3.3.7; 5.32; 15.7; 24.47에만 나온다. 특히 회개가 필요없는 의인들이란 문구의 낱말 하나하나는 루카 5.31-32에 다 나온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동사 회개하다는 마르코에 두 번. 마태오에 네 번 나오는 데 비하여 루카복음에 아홉 번., 사도행전에 다섯 번 나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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