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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24 조회수2,132 추천수2 반대(0) 신고

220624.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예수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수 마음”을 지닐 수가 있을까요? ‘예수 마음’을 가르쳐주기 위해, 오늘 <복음>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저는 이 비유를 들을 때마다 두 글귀가 가슴을 와 두들깁니다. 하나는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주십니까?”(시편 8,5)라는 감격스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노래와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창세 2,9)하시며 지금도 저를 찾으시는 주님의 애끊는 마음이 울려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보면, “예수 마음”은 무엇보다도 우선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마음’입니다. 한 마리의 양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생명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곧 그가 길을 잃었건 떠났건, 병들었건 약하건, 나를 좋아하건 미워하건, 그의 전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아니, 그가 아프기에 더욱 우선적으로 그에게로 흐르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본성은 필요한 곳으로 먼저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리는 하느님의 태중에 있는 우리와 ‘분리되지 않는 마음’(르하밈)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들은 비유에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끝까지 뒤쫓아 다닙니다. 이는 구원의 주체가 당신이심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먼저’ 찾아오시고, ‘끝까지’ 찾으시는 당신의 신실하신 마음과 사랑을 말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수 마음”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 비유 뒤에 나오는 ‘되찾은 은전의 비유’와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도 동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되찾은 후에, 부인은 잃은 은전을 되찾은 후에, 아버지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후에,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루카 15,6.9.32)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 비유의 정점이 잃은 것을 되찾는 것을 넘어서 ‘이웃과 함께 나누는 기쁨’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실 이 기쁨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나누지 않고는 못 베기는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아픔이 마치 백 마리의 양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아팠기에, 양 한 마리를 되찾은 기쁨이 마치 양 백 마리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기 때문입니다. 곧 한 마리를 잃은 것이 전부를 잃은 것과 같았고, 한 마리를 찾은 것이 전부를 찾은 것과 같은 까닭입니다. 그토록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십니다.   

 

바로 이 크신 사랑을 만나면 기쁘지 않고는 못 배겨나고, 나누지 않을 수가 없고,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과의 만남의 결과요, 사랑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쁨’은 사랑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곧 사랑은 가쁨을 품고 있습니다. 사랑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사랑이 결코 멈출 수 없듯이 기쁨 또한 결코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요한복음>사가는“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기쁨”(요한 16,22)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듯이, 또한 그 누구도 우리를 기쁨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테살 5,16) 

 

 “예수 마음”은 바로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자신을 건네주는 사랑의 기쁨에로의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늘도 이 기쁨의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고 당신의 기쁨을 나누어 주십니다. 아멘. 

 

  (그런데 나는 지금 우리 주님과 더불어, 또 내 형제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고 있는가? 기쁨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나누고 있는가? 혹 나누기보다 자신을 채우고 있지는 않는 걸까?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기쁘다면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쁘지도 않으면서 기쁨을 나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내가 우리 주님의 사랑을, 이미 먼저 베풀어져 건네 온, 그 큰 사랑을 본다면 기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루카 15,6) 

 

주님! 저를 먼저 찾으시고 끝까지 찾으시니 찬미를 받으소서. 보잘 것 없는 하나를 사랑하되 전부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고 먼저 사랑하되 끝까지 신실하게 사랑하시니 찬미를 받으소서. 보잘 것 없는 죄인 하나이지만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니 바로 이것이 제가 지닌 최상의 기쁨입니다. 아멘.   

 

(이 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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