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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02 조회수957 추천수2 반대(0) 신고

몇칠 전에 다시 고등학교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름을 바꾸신다고 하시더라구요. 아니 왜 이름을 바꾸세요? 이름이 나의 운명을 좌우하여서 이렇게 아주 힘들게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천주교 신자여서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냉담 중이라고 하시면서 완전히 천주교하고는 절교를 하신 것입니다. 자신은 이젠 이런 성명학이 나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이름도 개명 중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도 한번 너의 이름 풀이를 하여서 이름이 잘못되었으면 바꾸어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생각하여 보니 너무 엇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예수님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아니 나를 너무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아니 세상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자 오늘 복음으로 들어가 보면 주님에게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왜 당신들은 단신을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을 하는데 왜? 당신은 단식을 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을 왜 너만 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술을 새부대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동문서답을 하시는가? 그런데 사람들과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새 술은 새 부대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과 우리의 분명한 차이점은 무엇일지? 다른점이라면 ? 그것은 주님은 나를 정확히 알고 하느님도 알고 나의 이웃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기에 주님에게 단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고 이웃이 누구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나의 행동 방향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생활 방향 모토와 같고 지향점과 같습니다. 주님을 알면 나의 본 모습을 볼 수 있고 나의 인생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으니 사오정과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성당을 다니면서 주님을 보지 않고 다니신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군중 심리로 이리 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나는 살아있으되 진정한 나의 삶은 살지 못한 것입니다. 나의 삶은 없이 살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서도 허상을 믿은 것입니다. 선생님만 그렇게 믿은 것이냐?

 

아닐 것입니다. 허상으로 믿었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참 믿음으로 인해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나의 죽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죽을 것인가? 그것이 역순으로 작용하여서 현재의 나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어찌 죽을 것인가? 그것이 분명히 보입니다. 나 죽고 나서 나의 모습은 어찌 보여질것인가?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여 줄 것인가? 어찌 묻혀질 것인가? 이것이 나의 본 모습일 것입니다. 나의 죽음을 묵상하여 보니 나의 인생의 좌표가 보입니다.

 

주님이 보이고 나의 이웃이 보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나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이것이 새술입니다. 새부대입니다. 내가 어찌 살아야 하는 방향입니다. 매일 매 순간 살아계신 주님을 믿고 내 안에서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면서 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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