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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리 떼 가운데에서 양이 살아남는 법; 어떤 때는 뱀처럼, 어떤 때는 비둘기처럼!
작성자김글로리아7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07 조회수1,39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2년 다해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이리 떼 가운데에서 양이 살아남는 법; 어떤 때는 뱀처럼, 어떤 때는 비둘기처럼!>

 

 

 

복음: 마태오 10,16-23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라고 하십니다. 자녀가 양인데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야 하는 부모라면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2010년 틸리쿰이라는 한 고래가 그의 조련사 ‘돈 브랜쇼’를 공연 도중 물어서 사망하게 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착하던 범고래가 여 조련사를 물고 이리저리 휘저으며 풀장 안을 돌아다닌 것입니다. 브랜쇼는 머리 가죽이 벗겨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왼쪽 팔은 골절되고 팔꿈치는 탈구되어 잔인하게 죽었습니다. 브랜쇼는 씨월드에서 16년동안 일한 베테랑 조련사였고 틸리쿰과는 14년을 함께 일했을 정도로 친했습니다. 씨월드 측은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야생에서 범고래에게 인간이 공격당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범고래는 왜 그 오랜 우정을 깨고 자신의 조련사를 죽였던 것일까요? 범고래는 어미와 새끼의 교감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런데 틸리쿰은 어렸을 때부터 어미와의 교감 없이 수족관에서 훈련받으며 살았습니다. 가족의 애착 형성 없이 그저 인간을 위한 쇼와 번식용으로 사용되었던 틸리쿰은 그 쌓인 스트레스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두살 무렵 포획되어 다른 범고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좁은 물탱크에 수용되어 살았던 틸리쿰의 저 행동을 우리는 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본성대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성대로 살지 못하게 강요한 인간의 죄가 더 클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처 입은 범고래가 끝까지 자기에게 잘해줄 것을 믿은 것도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하고 말씀하십니다. 

    뱀처럼 슬기로워지라는 말씀은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마태 10,17)로 요약될 수 있고, 비둘기처럼 순박하여지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와 연결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뱀처럼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으니까 상처받습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말은 나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을 믿기 위해 믿지 말아야 하는 대상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나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배신당해도 자비롭습니다. 사람은 다 그런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 앞에서 비둘기처럼 순박하면 배신을 당하고 서로 원수가 됩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제 딸을 미국식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나 어떤 청년 둘이 제 딸을 술에 취하게 만들고 강간하려고 했습니다. 딸의 턱은 폭행으로 으스러져 철사로 봉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집행유예를 받다니요. 정의를 위해서라도 저는 돈 콜레오네를 찾아와야만 했습니다.”

    “도와줄 수 없네. 당신에게 미국은 낙원이었겠지. 나 같은 친구도 필요 없을 만큼. 그리고는 이제 찾아와 내게 정의를 구현해달라고? 존경심을 보이지도 않고 우정을 구하지도 않고 나를 ‘대부’라고 부르지도 않는데? 내 딸아이의 결혼식에 날 찾아와 돈을 주겠다며 살인을 요청하고 있어. 우정으로 날 찾아왔다면 그 인간쓰레기들은 당장 죽어 사라졌을 것이네. 하지만 이 ‘정의’를 내 딸의 결혼 선물로 받겠네”

 

 

    영화 ‘대부 1’의 시작 부분입니다. 대부 돈 콜레오네는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기를 배신하다시피 한 친구의 청을 그냥 들어줍니다. 이렇게 자비로울 수 있는 이유는 뱀처럼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들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며 이런 충고를 합니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어라.”

 

 

    멀리 있는 적은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그러나 가까이 두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있고 대처하기 유리합니다. 뱀처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자기 측근 중에서 누가 배신할 사람들인지 미리 알려주어 그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집단의 수장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대부인 알 파치노는 마지막에 30년 만에 고해성사를 합니다. 이것이 비둘기처럼 순박한 것입니다. 사람을 믿지 않는 만큼 하느님을 믿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뱀과 같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는 비둘기처럼 순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뀌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나 마더 데레사는 돈이 한 푼도 없으면서 커다란 병원을 짓고자 했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한 푼도 없이 무조건 시작합니다. 순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당대에 개인이 짓기에는 불가능한 커다란 병원을 지어냅니다. 



    이리 떼 가운데 양이 살아남는 법은 사람에겐 뱀처럼 대하고 하느님껜 비둘기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뱀처럼 믿지 않고 하느님은 비둘기처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세상으로 나아갈 때도 항상 이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리 떼 가운데 양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mD5WkEKzAXo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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