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0 조회수1,297 추천수3 반대(0) 신고

220710. 연중 제15주일.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오늘 <복음>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초라해진 저의 모습을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저 주변에도, 초주검을 당해 쓰러진 이들이 여기 저기 웅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마치 그들과는 반대방향의 열차에 앉아, 그들을 다루는 신문쪽지를 바라보며 혀나 끌끌 차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처럼, 길을 피해 달아나는 저의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낯선 이를 여관으로 옮겨가며 돌보아 준 사마리아인의 용기와 사랑 앞에, 그지없이 부끄럽고 숙연해집니다. 말없는 그의 헌신과, 뒷날까지 챙겨주면서도 고요히 떠나는 그이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교사와 예수님과의 두 번의 대화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대화>에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이 질문 뒤에는 율법교사의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곧 그는 ‘무엇인가를 해야’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마치 스스로의 행실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무엇을 행하느냐?’라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라는 존재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묻기 전에, 오히려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할 일입니다. 구원이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 있다는 것과, 자신은 그분께 메여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직책(소임)을 맡느냐보다, 어떤 사람으로서 그 직책을(소임)을 수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 대화>에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누가 제 이웃입니까?”(루카 10,29) 이 질문 뒤에도 역시 그의 옹졸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지? 사랑의 대상에 한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사랑의 대상에는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은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반문하십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루카 10,36) 

 

예수님께서는 누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 대답하기보다, 오히려 모든 이웃이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모두에게 이웃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단지 이웃이 아니라 형제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가 나의 이웃인가?’ 라고 묻기보다, ‘나는 이웃이 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일입니다. 곧 그가 나의 형제인가를 묻기에 앞서, 나는 그의 형제인가를 물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여기는 사람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여기는 사람을 우선하는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주실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여기에서, “서로 사랑하여라.”는 말씀도, “누가 제 이웃입니까?”라는 율법학자의 태도와 달리,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루카 10,36)라는 예수님의 태도와 같습니다. 곧 “서로 사랑하여라.”는 말씀은 ‘서로에게 사랑이 되어 주어라’, ‘그에게 사랑이 되게 하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결국, 오늘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대화의 마지막 구절인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루카 10,28;10,37)에 있습니다. 이는 아는 것에 멈추지 말고, 행동으로 실행하라는 요청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하라는 말씀이요, 의무적으로나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랑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사도 요한은 이렇게 표현해 줍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먼저 그 힘을 주셨습니다. 이를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말씀은 너희와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14)   

 

이는 이미 우리 안에 말씀이 와 계시니, 그 말씀을 입으로 선포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제2독서>의 ‘그리스도 찬가’ 역시 만물이 그분 ‘말씀’에서 창조되었고, 그분 안에 우리가 존속함을 말해줍니다(골로 1,15-20). 

 

곧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마리아인처럼 그렇게 해야 할 일입니다. 곧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주님! 초라해진 저의 모습을 봅니다. 초주검 당해 쓰러진 이들이 여기 저기 웅크리고 있건만, 나는 그들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앉아 신문쪽지를 바라보며 혀만 끌끌 차면서 슬며시 길을 피해 슬금슬금 달아나고 맙니다. 누가 제 이웃입니까? 묻기보다,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게 하소서! 그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사랑이 필요하기에 사랑하게 하소서! 나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랑을 간직한 사람, 무엇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하는 사람 되게 하소서! 아멘. 

 

(이 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