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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1 조회수989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제는 저의 성당에서 3년만에 사목회의를 열었습니다. 3년전에는 저는 성당에서 아무런 감투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올해 우리 성당에 어느 형제님이 저만 보면 매일 소리 소리 지르면서 구역장을 맞아서 해달라고해서 마지 못해 구역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좋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많이 힘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성당에 갈일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미사 참례를 하고 싶어도 못하였습니다. 방송미사로 대체 한다고 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영성체를 영하고 싶어도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같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이 괴로웠습니다. 성탄이 되고 부활절이 되면 우리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준비하는 상황이 않되었고 같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코로나의 상황이 호전이 되어서 어제 3년만에 처음으로 같이 모일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생 얼굴도 볼수 있어 좋았고 제가 모르는 형제 자매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칼을 주시러 오셨다고 하는데 그것의 의미가 무엇일지? 그런데 진정 주님이 바라시는 것이 사람 사이의 분열을 생각하고 계신 것인지? 그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어제 성당에서의 모임을 보아도 그렇구요.

 

그런데 하물며 가족간에 칼이 의미하는 것은 ? 그것은 메시아? 주님은 예수님이시고 그리고 구세주이시며 또한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공생활은 성모님과 혹은 주님의 친일척과의 관계가 없는 오직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관계 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칼로 두부를 썰듯이 바로 끊어진 그런 것이었을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인간으로 처음은 같이 시작하였지만 그러나 그분의 신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나와 다름을 일가 친인척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그런 모습으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것을 인간적으로 감내하신분이 주님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성의 차원을 달리 받아 들이면 우리 인간도 혈연으로 이어진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느님 아래 에서는 모두 한형제 자매입니다. 그래서 혈연의 친인척들일지라도 서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적인 형제애로 서로 나눈다면 더 높은 차원, 하늘나라의 세계가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일어 날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 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회개 입니다. 나의 근본 중심을 아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혈연의 나를 아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하느님과 나의 중심을 아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나의 중심을 정확히 알아서 우리 가정이 성가정이 될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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