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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1 조회수1,558 추천수3 반대(0) 신고

220711.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복음성경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길을 걸어가자”(베네딕도 규칙서 머리말 21) 

 

오늘 우리는 사부 성 베네딕도를 기리며, 우리의 수도생활을 들여다봅니다. 우리의 수도 생활에 활력을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수도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은 진정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기도와 삶, 신앙과 삶, 말씀과 전례와 삶은 결합되고 있는가?

 

[대화집] III권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베네딕도께서는 수도원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동굴에서 쇠사슬로 자기 몸을 바위에 묶어두고 사는 마르띠노라는 은수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주님의 참된 제자라면, 차라리 그대 자신을 그리스도께 묶어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참으로 그렇습니다. 스스로 묶는 ‘자기고정’이 우리의 삶을 영적 정주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대체 어디에 자신을 묶어 두고 있는가? 나는 진정 무엇에 묶여 있는가?   

 

혹 우리가 피조물과 사람들에게 묶여있지는 않는지, 혹은 자기 자신에게 묶여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결코 떨어질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에 묶여 있는 이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수도승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사람일 것입니다. 진정,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기쁨이요, 희망이요, 토대일 것입니다. 

 

그러니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묶어두는 일, “아무 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낫게 여기지 않는”(성규 4,21;72,11) 일,

 

바로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요, 활력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성경”, 곧 “말씀”에 묶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성규]가 “성경”에로 방향 지어져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규칙서] 안에서 “성경”은 매일 거행하는 전례에서도, 매일 일과 속의 거룩한 독서에서도, 매일의 식탁독서에서도, 심지어 손님환대에 있어서도 성경을 읽는 시간과 장소가 제시되어 있고, 특별히 아빠스는 “성경 외는 아무것도 가르치거나 정해서는 안 된다.”(성규 2,4)고까지 말하고 있으며, “머리말”에서는 “복음성경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길을 걸어가자”(머리말 21)고 수도승생활의 인도자로 제시되고 있으니, 참으로 사부께서는 “성경”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짧은 [규칙서] 안에 성경의 인용구 내지 암시가 약 250개나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곧 “말씀”에서 활력을 얻어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말씀”이 기도가 되고, 전례가 되고, 삶이 되고 있는가? 만약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면, 왜 그리 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수도생활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기도와 말씀과 삶의 부조화와 불일치의 모순 현상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말씀이 기도가 되게 하고, 기도가 삶이 되게 해 줄 수 있을 까요? 우리의 삶과 기도와 신앙을 하나로 엮어 줄 수 있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말씀의 영이신 성령이 아니고야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의 영으로 기름칠 된 독서”(lectio untionis)가 아니고서 무엇일까요? 바로 “렉시오 디비나”가 아니고서야 무엇일까요?   

 

모세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10-14)   

그렇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입에, 마음에 담겨 있어야 삶으로 실천될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입에 되뇌며 다니는 “렉시오 디비나”야말로 바로 말씀이 삶이 되게 하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인 ‘“말씀”에 매달려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당신의 사랑을 이루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곧 우리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요 공간이 되어 드리는 일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요 거처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는 거처 말입니다. 그리하여 [성규] “머리말”에서처럼,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찬미”(머리말 30)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께 묶여 있고, 말씀에 묶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와 말씀에 묶어두고서, 아무 것도 그리스도보다 낫게 여기지 않았던 축복받은 성인 베네딕도를 기리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수녀님들 안에 차고 넘쳐나길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주님! 제 목에 칼을 견주소서. 당신 영의 칼로 저의 자애심을 내리치소서! 제 심장에 당신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그 어느 것도 당신보다 더 사랑하지 말게 하소서! 말과 혀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이 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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