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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르타와마리아 (루카10,3?8-42)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6 조회수1,302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16주일 (농민주일) 복음 (루카10,38-42)


마르타와마리아

(루카10,38-42)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오늘 또한 어제 묵상했듯이 율법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읽어 행위의 신앙으로 영원한 생명을 빼앗긴 여자와 그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찾고다 들음의 신앙을 사는 여자의 이야기인 것, 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신앙은 예수님께 다가가 사람의 일을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기도)

그런 이들은 마르타 처럼 말씀에 열중하는 이들을, ‘활동에 열심 하지 않는다‘ 비난하며 싫어한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말하면 '개신교 신자 같다'느니 하니 언제부터 성경이 개신교의 것이 되었는지 원~~

우리 교회 안에서도 ‘교회 다닌다’하면 개신교 신자로,~ ‘기독교 신자’라 해도 개신교로 듣는다. 그 만큼 우리 신자들은 성경의 단어와도 멀어져 있고 말씀도 모르고, 말하는 것도 어색해 한다.

 

그러니 말씀을 깨닫고자 하는 것보다, 3~40분 걸리는 미사를 제사로 드리는 그 종교 행위에 만족해 하고, 좋아해 한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聖 예로니모)

그리스도를 모르면 어떻게 구원을 받겠는가? 내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 그래서 죄인인 내가 그분과 한몸이 되었다는 사실,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있음’을 모른다면, 믿지 못한다면, 그래서 내 밖에 그리스도로 시중드는, 섬기는 그 신앙을 不義라 하신 것이다.(마태8,21-23참조)

어느 사제께서는 ‘성경보다 교리가 먼저’라고 여기 굿뉴스에 묵상글을 올려 신자들을 헛갈리게 하시는데, 아무래도 그분은 성경을 모른다는 결론이다. 

성경을 올바로 보셨다면 그런 묵상글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지 않는 신자들이 얼마나 있겠냐는 것이다. 대부분 사제의 글이라면 맹종으로 신자들은 그냥 ‘딸랑 딸랑’이니 말이다.

 

(신명12,28) 28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명심하여 들어라. 그렇게 하는 것이 주 너희 하느님의 *눈에 드는 *좋은 일과 *옳은 일을 하는 것이므로,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영원토록 잘될 것이다.”

= 말씀을 듣는 것이 하느님의 눈에 좋은,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하느님의 눈(뜻, 지혜, 계명)으로 보고 듣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눈(관점)으로 보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마르타 신앙이 된다는 것이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신앙인이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좋은일, 옳은 일은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 일 한 가지 뿐인 것, 예수님께서 그 한가지 일을 하셨을 뿐이라 하셨쟌은가(요한7,21)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하느님의 일은, 그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길(십자가)을 구원(생명)의 진리로 믿는 그 한 가지 뿐인 것이다.(요한6,29참조)

그러나 천주교나 개신교나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기 위한 좋은 일과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본당(창4동)의 경우 많은 단체, 심지어 취미 단체도 많지만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단체가 없다.(청년 성경공부 외에는) 

참으로 답답해서 주임사제께~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단체를 부탁드렸더니 사정상, 여건상 힘들다 하신다.(코로나19발생전에~) 하느님의 교회에서 그분의 말씀 공부가 다른 단체들(세상적)에게 밀려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말라1,10) 10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성전 문을 닫아걸어서 너희가 내 제단에 헛되이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너희 손이 바치는 제물을 받지 않으리라.

= 지금은 제사 드릴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사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감사의 잔치(미사-에우까리스티아-①용서하다 ② 감사하다 ③ 이해하다.)를 드릴 때인 것이다.(히브서10장참조)

그 중에~(히브10,18)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 ! 오늘 같은 날에 주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고, 이웃과 매일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매일미사글 중에서  묵상글을 추천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그들의 위치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보다 ‘위’에 있습니다. 이는 ‘다가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말 ‘에피스테미’를 번역한 것인데, 본디 그 뜻이 ‘위에 서다.’입니다. 곧 이 말은 예수님께서 바닥에 앉아 계실 때 마르타는 그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르타가 예수님을 자신보다 위에 계신 분이 아니라, 아래에 계신 분으로 여긴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보다 ‘아래’에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발치에 앉았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위치에서 알 수 있는 그들의 사랑법은 무엇일까요? 

마르타는 자신이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예수님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시선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 결과 염려와 걱정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다그치기에 이릅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마르타와 달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내버려 두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인간에게 가장 큰 영광은 그가 무엇을 하였느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해 주셨느냐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발치에서 그분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께서 일하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 그분 사랑에 맞갖은 사랑법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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