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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8 조회수1,296 추천수3 반대(0) 신고

요즘에 법률 드라마를 봅니다. 법률 드라마를 보면 악인이 나오게되고 그 악인이 세상을 어지럽히면서 사람들을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끔찍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혹독한 악인에 대항하는 인물이 나오게 되고 그 대항하는 인물은 악에 승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해서 결국에는 악인을 굴복시키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이것을 심판이라고 생각 할 것입니다. 심판은 절대 권력을 가진자가 와서 상선 벌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과연 주님은 상선벌악을 하시는 분인가? 

 

산선 벌악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회개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자신을 재물로 바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심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무디게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응답입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주님은 인간이 회개하길 바라시는 분입니다. 죽어가는 순간 그 사람이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사람들로 부터 손가락질을 받은 악인일 지라도 주님은 그 영혼을 측은하게 보시고 끝까지 회개 하길 바라시는 분이고 온 몸을 바치시는 분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혹은 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 기준에 어긋나면 단절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에게 심판은 갑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희망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고 하느님의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이 말씀 앞에 회개입니다. 또한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자주 고백성사를 보는 것이고 더욱 희망스러운 것은 신부님 수녀님과 같은 분들과 잦은 대면 상담을 해서 나의 진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단좌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난 않되..나 같은 사람이 어찌 ...이런 말을 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심에 눈을 감는 것이 심판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안에 머물면서 항상 그분의 선의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저도 나름 선의를 찾고 있습니다. 아침에 요셉 수도회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글을 매일 옮기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 신부님은 매일 아침 3시에 묵상글을 올리시는 분이고 이분의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독자층이 50세 이상인데 주 독자층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는 60대 후반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전달하려면 새벽에 일찍일어나야 합니다. 저도 자는 시간 희생하면서 신부님의 글을 옮깁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면서 좋은 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글을 읽고 하느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느님의 선을 쌓는 행위는 나도 행복하지만 받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것을 먼저 찾으십시요.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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