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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코로나가 무서워 성당에 못 나오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 백성 맞을까?
작성자김글로리아7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9 조회수1,18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2년 다해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코로나가 무서워 성당에 못 나오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 백성 맞을까?> 

 

 

 

 

 복음: 마태오 11,25-27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농부는 씨를 길과 자갈밭, 가시밭에 뿌리고 좋은 땅에도 뿌립니다. 당연히 좋은 땅에서만 30배, 60배, 100배의 소출을 거둡니다. 
    길은 교만을, 자갈밭은 육욕을, 가시밭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뜻합니다. 이것이 있는 땅에서는 말씀이 죽습니다.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잃습니다. 삼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비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산도 돈이요, 물도 돈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세속에 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져서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대신 공부를 잘하고 모든 것의 이면을 바라볼 눈을 지녔습니다. 사건을 맡아서 해결할 때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런데 우영우가 가장 잘 먹는 음식이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김밥이라는 독특한 설정도 나옵니다. 저는 이것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나보다 위의 세상에 사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은 다 비유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만약 제가 끝까지 교만하였다면 어머니를 믿지 못하였을 것이고 지금도 다리 밑에서 진짜 엄마를 찾아다닐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야 그 다리가 어머니 다리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의심될 때는 어머니가 주시는 음식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비유를 이해하여 어머니가 참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가 주시는 음식 안에 어머니의 살과 피가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면 하나를 끓여주더라도 반찬 투정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생명의 빵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것들이 하나의 상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영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례나 성체성사와 같은 교회의 성사가 하느님의 살과 피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체를 영하면서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란 프로에 보면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을 재현한 셰프의 요리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출연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어머니가 해 주셨던 음식과 똑같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다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면 결국 이해하게 되는 것이 ‘밥’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코로나 때문에 성체를 영하러 오지 않는 이전의 신자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저는 그들이 아직은 세속-육신-마귀에 사로잡혀서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한 이들이라 여겨집니다. 만약 말씀의 열매를 맺었다면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기를 원치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본다면 수십 년을 신앙생활하고도 코로나라는 작은 병균에 생명의 양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교만하거나 육욕에 빠졌거나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빵의 가치를 몰라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태 13,34)라고 합니다. 꿀을 먹어본 사람은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비유로밖에 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의 수준을 배워갈수록 이 비유 말씀을 더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들을 귀’가 필요합니다. 들을 귀는 바로 ‘도움의 은총’입니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묵상하여 말씀을 잉태하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셨다는 뜻은 성모님께서 세속-육신-마귀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들을 귀가 생기고 그래야 천상의 비유가 이해되며 그래야 순종할 수 있고 그래야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세속-육신-마귀의 욕구와도 싸워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https://youtu.be/5Oe5p2y1r2I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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