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20 조회수1,976 추천수7 반대(0)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과부 마음은 과부가 안다고 하고, 며느리 마음은 며느리가 안다고 합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에서 두 가문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1740년대에 두 명이 아일랜드에서 미국 동부로 이민 왔습니다. 한 명은 뚜렷한 목표가 없이 살았습니다.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살았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습니다. 다른 한 명은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살았습니다. 환경을 개척하면서 살았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면서 살았습니다. 260년이 지난 2000년도에 두 가문의 자녀들의 삶을 추적했다고 합니다. 목표가 없었던 가문의 자녀들은 사회의 공헌도가 낮았다고 합니다. 교도소에 가는 사람도 많았고, 도박과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목표가 있었던 가문의 자녀들은 사회의 공헌도가 컸다고 합니다. 정치인, 법률가, 교수, 의사가 많았다고 합니다. 존경받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시작은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는 달랐습니다. 삶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서산대사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답설야중거 할 땐 불수호난행하라 금일아행적이 수작후인정 할 것이다.’ 눈 덮인 길을 걸어갈 때면 발걸음을 신중하게 하라, 지금의 발걸음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김구선생님도 이 말씀을 평생 삶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피의 순교로 사제들에게 좋은 이정표를 보여주었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땀의 순교로 사제들에게 좋은 이정표를 보여주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박해를 견디어내며 순교함으로써 좋은 이정표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를 통해서 박해받던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사를 기릴 뿐 아니라 민족의 현재를 변혁시키는 누룩이 되고,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빛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빛과 땅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1984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주례로 103위 시성식이 있었습니다. 103위 성인과 순교자들은 이 땅의 빛이 되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44차 세계 성체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로 성체대회가 열렸고, 변방의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22년입니다. 자랑스러운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이정표를 우리가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교회의 통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밀을 심었는데 우리는 어느새 가라지를 심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목숨을 걸고 미사참례를 했는데 지금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성당이 있음에도 주일 미사 참례자는 10%대로 떨어졌습니다. 90%의 신자는 주일 미사 참례를 안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주일학교에서 교리를 배우면서 첫영성체를 하였습니다. 성당에서 준비한 여름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신앙은 곧 삶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정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펙을 쌓는 데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아이들의 첫영성체 교리에는 관심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은 장려하면서 아이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모른척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 아픈 이, 장애인, 고독한 이들이 성당의 문턱이 높다고 호소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따라올 수 있는 참된 신앙의 이정표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은 21 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해당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우리들 또한 주님께서 보여 주신 길을 이정표 삼아 참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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