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1 연중 제16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20 조회수2,051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1-3.7-8.12-13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가서 예루살렘이 듣도록 외쳐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3 이스라엘은 주님께 성별된 그분 수확의 맏물이었다.
그를 삼키는 자들은 누구나 벌을 받아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주님의 말씀이다.

 

7 “내가 너희를 이 기름진 땅으로 데려와
그 열매와 좋은 것을 먹게 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여기 들어와 내 땅을 더럽히고
나의 상속 재산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
8 사제들도 주님께서 어디 계신가?’ 하고 묻지 않았다.
율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몰라보고 목자들도 나에게 반역하였다.
예언자들은 바알에 의지하여 예언하고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을 따라다녔다.

 

12 하늘아, 이를 두고 깜짝 놀라라. 소스라치고 몸서리쳐라.
주님의 말씀이다.
13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예수께서는 10-23절에서 따로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신다. 마태오는 10-17절에 마르 4,10-12의 골격을 따르면서 12절에는 마르 4.25 옮겨쓰고, 16-17절에는 어록(루카10,23-24)을 옮겨썼다.

 

이스라엘 백성 절대다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예수를 배척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이는 인간의 논리만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불신 현상을 하느님의 예정설로 풀이하게되었고 이때 성서적 근거로 이사 6,9-10을 인용하곤 했다(마르 4.12=마태 13,14-15; 사도 28,26-27;요한 12,39-40).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도록 부정적으로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공관복음 전승의 경우, 이미 마르코 이전에 부정적 예정설이 있었는데(마르 4,11-12 단절어) 공관복음 작가들은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이 부정적 예정설을 수용했다.

 

마태오의 관점: 하느님께서 제자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셨지만 이스라엘에게는 그렇게 예정해 주시지 않았다(11). 그러니 제자들은 점점 더 알아 듣게 되고 이스라엘은 점점 못 알아듣게 된다(12). 이미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부정적 예정으로 말미암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심정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처사를 본받아 예수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비유들로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3). 하느님의 부정적 예정의 성서적 근거로 칠십인역 이사 6,9-10을 인용한다(14-15).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특히 비유들을 이해하니 복된다(16-17).

 

역사적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성격을, 특히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을 좀더 쉽게 이해시키고자 자주 비유로 말씀하셨다. 대체로 농업, 어업, 목축업, 상업, 가사 같은 데서 자연스럽게 예를 드셨다. 그런데 마르코와 마태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부정적 예정의 일환으로 예수님의 비유들을 평가함으로써 전혀 엉뚱한 비유 이론을 전개하게 되었다.

 

, 청중이 못 알아듣도록 하려고 일부러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유는 이해하기 쉬운 예화가 아니라, 설명을 듣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은 따로 비유들을 설명해 주셨다고 한다(13,18-23,36-43).

 

11

마르 4.11에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주셨지만”, 마태 13.11(=루카 8.10)에선 하늘(하느님)나라의 신비를 알아듣게 해주셨지만”.

 

12

12절은 마르 4.25를 전재한 것이다. 원래는 부익부 빈익빈을 개탄하는 속담이었겠다(잠언 11.24). 마태오의 문맥에선, 예수님의 비유들의 뜻을 알아듣는 제자들에게는 하느님이 더욱더 알아듣는 은혜를 주시고, 그렇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더욱더 못 알아듣도록 하신다는 뜻이다.

 

16

16.17(=루카 10.23-24)은 어록에서 따온 단절어. 단절어의 원래 뜻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듣는 제자들은 복되다는 것이다(11.5 참조). 마태오의 문맥에선, 제자들만은 예수님의 비유들을 이해하므로 복되다는 뜻이다. 메시아 시대를 체험하는 사람은 복되다는 뜻이다. 메시아 시대를 체험하는 사람은 복되다는 행복선언이 솔로몬의 시편 17.50: 18.7에 나온다. “복되어라. 그 시대에 살게 될 사람은!”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