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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21 조회수1,937 추천수7 반대(0)
한국문화와 일본문화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문화의 특징은 선을 넘는 문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라고 합니다. 선을 넘는 우리의 문화는 국악과 현대음악의 조화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선을 넘는 우리의 문화는 역동성과 다양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정치에 있어서도 정치인들에게만 맡기지 않았습니다. 정당에 참여하기도 하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의 사명이며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명절이면 먹을 것을 나누곤 합니다. 최근의 한류 열풍은 선을 넘는 우리문화의 특징이 드러난 것이기도 합니다. 선을 넘는 우리의 문화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정이 지나치면 간섭이 되기도 합니다. ‘오지랖이 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의 이런 간섭과 오지랖이 많은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선을 넘는 문화는 외적인 다양성과 역동성은 크지만 내적인 역량을 쌓는 데는 소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 문화의 특징은 선을 긋는 문화라고 합니다. 한국의 씨름은 씨름판 위에서 삼세판을 하지만 일본의 스모는 스모판에서 몰아내는 단판 승부입니다. 선을 긋는 일본 문화는 좀처럼 타인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정치에도 좀처럼 관여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선을 긋는 문화는 상당히 정적입니다. 사회가 정의로울 때는 평화를 유지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전념하기 때문에 기초과학이나 물리학에 큰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을 긋는 문화는 사회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선을 긋는 문화는 현대인들에게 고독과 소외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선을 긋는 문화는 상대방의 호의에 마음을 여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원한다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을 자주 넘으려는 한국의 문화는 선을 긋는 일본의 문화의 신중함과 진중함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선을 엄격히 긋는 일본의 문화는 선을 넘는 한국 문화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어떤 것인지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을 넘는 경우가 많으셨습니다. 연민과 사랑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과 멀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하느님을 뜻을 따를 때까지 기다려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지만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선을 넘는 경우가 많으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을 부르셔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배반하는 유다를 막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워 도망간 제자들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선택을 존중하셨습니다.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축일입니다. 오늘의 감사송은 막달레나 성녀의 삶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주님께서는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우리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막달레나는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 일수도 있고,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일수도 있고, 오랜 동안 하혈을 하던 여인 일수도 있고, 일곱 마귀가 들렸던 여인 일수도 있고, 부정한 행위를 한 후에 잡혀온 여인 일수도 있습니다. 성서가 전해주는 막달레나는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죄 중에 있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막달레나는 지금 우리들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 역시 나약하고, 부족하고, 쉽게 넘어지고, 원망과 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막달레나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갈망입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 날 무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받은 것 많았던 제자들이 두려움에 숨어 지낼 때, 막달레나는 주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능력과 재능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 열정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결심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을 찾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사랑을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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