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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 요나탄의 등장 / 요나탄 아푸스[2] / 1마카베오기[2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22 조회수1,541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요나탄의 등장(1마카 9,23-53)

 

저 용맹한 마타티아스의 다섯 아들 중 셋째인 유다 마카베오는 베렛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유다가 죽은 뒤, 온 이스라엘 영토에서는 무도한 자들이 머리를 치켜들고,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 모두 일어났다. 더구나 그때에 큰 기근까지 들어 온 지방이 그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바키데스는 사악한 자들을 뽑아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들이 유다의 벗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바키데스에게 끌고 가자, 바키데스는 그들에게 보복하고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끊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큰 재난이었다.

 

그리하여 유다의 벗들이 모두 모여 마타티아스의 다섯 아들 중 막내인 아푸스라고 하는 요나탄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형 유다가 죽은 뒤로는, 적들과 바키데스와 우리 민족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유다처럼 맞설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마카베오의 후계자로 당신을 뽑아 우리의 지도자로 삼고 우리의 전쟁을 지휘하게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요나탄은 지휘권을 받아 자기 형 유다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렇게 유다의 동생이자 마타티아스의 막내 요나탄이 형의 자리를 물려받은 사실을 바키데스는 알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요나탄과 그의 형 시몬과 그의 모든 군사는 그것을 알고, 트코아 광야로 달아나 아스파르 못 가에 진을 쳤다. 아모스 예언자의 고향인(아모 1,1) 트코아는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18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동네로 트코아 광야를 내려다보는 곳이다(2역대 20,20). 그리고 아스파르는 트코아에서 남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일 것이다.

 

바키데스도 안식일에 그 사실을 알고서 전군을 이끌고 요르단을 건넜다. 요나탄은 보급대의 책임자인 형 요한을 보내어 자기의 벗들인 나바태아인들에게 많은 양의 짐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메드바의 얌브리 자손들이 나와 요한을 붙잡고 그가 가진 모든 것도 함께 빼앗아 가 버렸다. 메드바는 요르단 동쪽 고원의 성읍으로 사해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민수 21,30 ).

 

이러한 일이 있은 뒤, 사람들이 요나탄과 그의 형 시몬에게 보고하였다. “얌브리의 자손들이 큰 혼인 잔치를 벌이는데, 가나안 대귀족의 딸인 신부를 데리고 큰 대열을 지어 나다밧에서 오고 있습니다.” 그곳은 느보산 근처에 있던 느보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자기들의 형 요한의 참혹한 죽음을 생각하며 산으로 올라가서 매복하였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많은 짐을 진 소란스러운 행렬이 오는데, 신랑과 그의 벗들과 형제들이 그 행렬을 맞이하러 손북을 치는 사람들과 악대와 무기를 든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나왔다.

 

그때에 요나탄 형제가 매복해 있던 자리에서 나가 그들을 죽였다.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어 쓰러지고 살아남은 자들은 산으로 달아났다. 요나탄 형제는 그들의 물건을 모두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혼인 잔치는 슬픔으로 변하고 그들의 악대 소리는 통곡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요나탄 형제는 형의 참혹한 피의 죽음을 복수하고 나서 요르단 습지로 돌아갔다. 그곳은 키 작은 가시나무들로 뒤덮여 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보고를 받은 바키데스는 안식일에 큰 군대를 거느리고 요르단 강 가로 나갔다. 그때에 요나탄이 자기 군사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싸우자. 정녕 오늘은 어제와도 그제와도 같지 않다. 지금 우리는 앞뒤로 싸워야 한다. 이쪽은 요르단 강물이, 저쪽은 습지와 덤불이 가로막아 비켜 나갈 곳이 없다. 그러니 이제 하늘을 향해 소리쳐 적들의 손에서 구해 달라고 하여라.” 싸움이 시작되자 요나탄은 바키데스를 치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바키데스는 그를 피하여 뒤로 물러섰다. 요나탄과 그의 군사들은 요르단 강에 뛰어들어 건너편으로 헤엄쳐 갔다.

 

그러나 적군은 그들을 뒤따라 요르단을 건너지 않았다. 그날에 바키데스 쪽에서 천 명가량이 쓰러졌다. 바키데스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다에 있는 성읍들, 곧 예리코의 요새와 엠마오, 벳 호론, 베텔, 팀나, 파라톤, 테폰을 높은 성벽과 성문과 빗장으로 튼튼하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그곳에 수비대를 배치하였다. 또한 그는 벳 추르 성읍과 가자라와 예루살렘 성채를 튼튼하게 한 뒤, 군대를 배치하고 양식을 쌓아 두었다. 그리고 그 지방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잡아다가, 예루살렘 성채의 감옥에 가두었다.

 

마타티아스의 막내 요나탄이 형 마카베오의 뒤를 이어 유다의 지도자가 된 후 백오십삼년 둘째 달, 기원전 1594-5월에 대사제 알키모스는 성소 안뜰의 벽을 모두 헐어 버리라고 명령하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2. 바키데스의 패배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알키모스,바키데스,요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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