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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 연중 제19주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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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聖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人들. (루카9,27-36)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06 조회수92 추천수1 반대(0) 신고

2독서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2.8-12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조상들의 믿음

11장은 앞의 훈화의 끝부분에서 예시한 대로 믿음에 관한 장이다. 저자는 먼저 믿음의 의미와 특징을 밝힌 다음, 아벨에서 비롯하여 마카베오 시대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위대한 조상들을 길게 열거한다. 등장 인물의 순서는 대체로 구약성서의 역사 순서를 따르는데, “믿음이라는 주제어가 후렴 형식으로 중간중간에 반복된다. 훈화는 크게 나누어 1-2절의 서론과 3-38절의 본론과 39-40절의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론은 다시 3-12, 13-16, 17-31, 32-38절의 네 부분으로 나누인다.

 

1

1절에서는 믿음에 대한 본격적 강론에 들어가기 전에 그 정의부터 내린다. 저자는 바오로와 같은 방법으로 현재의 것과 미래의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들어 믿음의 본질을 설명한다. 믿음에 대한 이 정의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단어는 실상근거. “실상은 본질, 실제, 보증, 확증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확증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확증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문장 내용으로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사물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실상이다. “근거는 논증, 증거, 근거, 아는 방법, 신념 등의 의미가 있다. 이 단어 역시 앞의 실상과 관련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근거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

 

2

하느님께서는 다음에 열거한 믿음의 조상들에게 당신 자신과 그 구원 계획을 알려 주셨으며, 조상들은 믿음을 통하여 그 계시를 받아들였다.

 

8

후기 유다인즘에서 시작하여 초기 그리스도교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적 관념을 염두에 두고 8-19절에서 믿음의 길을 충실히 걸어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그의 부인 사라의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전개한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의 설화가 꽤 길게 나오는데, 저자는 그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부각시킨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났고 이 순종은 그로 하여금 고향을 떠난 유랑인 및 이방인이 되게 했다. 그의 믿음과 순종과 유랑생활은 광야 여행을 한 이스라엘 백성과 지상 여행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표본이다.

 

9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계속 이방인으로 살았고, 이 생활은 그의 아들 이사악과 손자 야곱과 함께 계속되었다. 이사악과 야곱은 하느님의 약속하신 후손이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도 약속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유랑생활은 약속의 땅에서도 계속되어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고향을 바라면서 계속 믿고 순종했다.

 

10

튼튼한 기초 위의 도시는 유다 랍비문헌이나 묵시문헌에 흔히 나오는 천상 예루살렘이다.

 

11

자손을 낳을 능력은 표현 자체로는 남자의 성적 능력을 나타내므로 아브라함에게 더 적합하지만 모든 사본이 사라에게 직용시키고 있다. 창세기에서는 또한 사라가 의심하면서 웃은 사실을 부각시키는데 여기서는 그 사실은 접어둔 체 사라를 성실하신 하느님을 신뢰하는 표상으로 내세운다. 이것은 이스라엘 성조들의 부인을 믿음과 덕의 모범으로 살던 유다 신심을 따른 것이다. 믿음은 이렇게 사라의 경우와 같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사실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2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는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의 성서적 숙어다. 저나는 이 수많은 사실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2-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12,33-34는 어록에서 옮긴 것인데, 루카보다 마태오가 어록을 더 충실히 베꼈다. “여러분을 위해서 보물을 땅에 쌓지 마시오. 거기서는 좀과 벌레가 갉아먹고 도둑들이 뚫고들어와 훔쳐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시오. 거기서는 좀도 벌레도 갉아먹지 않고 도둑들이 뚫고들어오지도 훔쳐가지도 못합니다. ”사실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우선 마태 6,19-20을 살펴보면 금령과 명령이 완벽한 병행문을 이룬다. 이는 귀한 재물을 땅에 다 모으지 말고 하늘에다 모으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늘에다 모을 수 있을까? 마르 10.21을 참작건데,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면 그렇게 된다. “가서 가진 젓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마태 6.19-20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마태 6.21은 격언 같은 인상을 준다. 이 격언은 본디 19-20절과 상관없이 전해온 것이다. 이 까닭인 즉 19-20절에서는 상대가 여러분이고 21절에서는 뜻밖에도 당신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천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지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시오와 상통하는 말씀이겠다.

 

33

33ㄱ절은 분명히 루카의 가필이다. 사실 여기 소유있다 이다동사의 현재분사형 명사를 번역한 것인데, 그 동사는 네 복음서 가운데 마태오복음에 세 번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루카복음에만 무려 열다섯 번이나 나온다.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에도 스물다섯 번이나 사용되었다. 그리고 자선이란 명사로 말하면, 온 신약성서를 통틀어 마태오복음에 세 번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루카의 두 작품에만 열 번 나온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

루카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를 어록에서 옮긴 것 같다. 무엇보다 이 비유는 분명히 어록에서 따온 뒷문맥과 놀라울 만큼 그 소재나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태오는 이 비유를 삭제하고 그 대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를 이 자리에 배치하겠다 하겠다.

 

루카는 어록에서 이 비유를 옮겨쓰면서 35.37ㄴ절을 가필한 것 같다. 이것들을 삭제한 나머지 36-37,38절이 어록의 비유 형태라 하겠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는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와 너무나 닮았다. 예수께서는 본디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를 말씀하셨겠는데 어록의 전승자는 이를 고쳐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로 개작했을 것이다.

 

두 가지 비유의 뜻인즉,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도래할는지 모르니 항상 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이 대비하는 길이다.

 

35

33ㄱ절이 루카의 가필인 것처럼 그와 매우 비슷한 문체를 지닌 35절 역시 가필일 것이다. 이를 삭제해도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는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37

37ㄴ절은 차라리 없어야만 비유의 흐름이 자연스럽겠다. 루카는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시중을 드신 사실, 종말에 하느님 나라에서 잔치가 있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여 37ㄴ절을 꾸몄을 것이다.

 

도둑 상징어

12,39-40은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이 상징어의 뜻인즉, 종말이 언제 닥칠지 모르니 늘 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종말을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 이해하셨다. 그러나 어록의 교회에서는 종말이 되면 예수님이 인자로서 내림하여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신다고 본 까닭에 하느님 나라인자로 대치시킬 수 있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주님의 날또는 예수 주님이 도둑마냥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시리라는 상징어를 즐겨 사용했다.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 비유

12,41-46 단락에서 41절의 질문은 루카의 가필이고 42-46절의 비유는 어록을 옮긴 것이다. 같은 비유가 마태 21.45-51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41

41절이 루카의 가필인 까닭은 이렇다. 우선 “... 향하여 말하다는 분명히 루카의 필치다. “이 비유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와 도둑의 상징어를 다 뜻하리라. 그러면 루카는 이 비유”.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비유들을 누구를 상대로 발설하셨다고 보았을까? 청지기에게, 주인의 뜻을 알며, 많이 받고 많이 받은 사람에게, 그러니까 교회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신 비유라고 보았겠다.

 

42

만일 예수 친히 42-46절의 비유를 말씀하셧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 도래할지 모르니 ㄷ4당신의 가르침을 귀담아듣고 회개하라는 뜻이겠다. 즉 이 비유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 및 도둑의 상징어와 그 뜻이 같을 것이다.

 

그러나 어록작가는 루카는 이 비유를 교회 지도자들에게 적용했다. 비록 예수님이 당장 내림하지 않고 다고 지체하시더라도 모름지기 교회 지도자들은 신도를 잘 돌보아야만 그분이 갑자기 내림하시는 날에 구원을 받는다. 만일 교회 지도자들이 종말이 지연된다는 핑계로 신도를 저버린다면 종말심판 때 멸망하고 말 것이다.

 

45

어록작가는 한편으로 예수께서 가까운 시기 안에 내림하시리라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오시는 것은 아니고 다소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내림하싫 줄로 믿었던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종 상징어

12,47-48은 루카 특수자료다. 그 유래에 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종의 상징어와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리라는 단절어를 루카가 수집하여 이 자리에 배치했다고 보는 설. 된 관리에 관한 비유를 참작하여 루가가 47-48절을 형성했다고 보는 설.

 

47

만일 예수께서 47-48ㄱ절의 상징어를 발설하셨다고 가정한다면, 율법을 전공한 율사들과 율법에 무식한 백성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겠다. 또는 하느님을 아는 유다인들과 그분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겠다.

 

이 상징어는 초대교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교회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몰라서 행하지 않는 평신도들보다 엄한 심판을 맏게 되리라는 것이다.

 

어쨌든 루카는 당대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 상징어를 적용했다.

 

48

48절의 단절어는 격언처럼 들리는데 역시 예수 친히 발설하셨는지 아닌지 단정하기 어렵다. 루카는 이것도 교회 지도자들에게 적용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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