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7 연중 제20주간 수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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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8-16 | 조회수72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4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6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8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0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게 하신다.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해 선한 포도원 주인 비유 20,1-15의 비유를 일컬어 흔히 “포도원 일꾼들 비유”라고 하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선한 포도원 주인 비유”라 불러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포도원 주인처럼 너그러운 고용주는 다시 없거나 지극히 드물다. 따라서 이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대하는 보통 비유가 아니고 그야말로 보기 드문 특례 비유다. 이 특례 비유는 하늘나라 비유다. 곧 하느님의 처신을 밝히는 이야기다. 공덕에 정비례하여 보상하는 하느님이실 뿐 아니라, 공덕에 상관없이 은혜를 베푸는 하느님이시다. 비교적 시원한 오후 다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 한 시간 남짓 일한 사람에게 놀랍게도 하루 품삯을 쳐주는 주인 같은 하느님이시다. 잠시 일한 일꾼에게 새벽 여섯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고생한 일꾼의 품삯과 똑같은 품삯을 쳐주는 주인마냥 너그럽기 그지없는 하느님이시다. 그럼 예수께서 오늘의 신학자들처럼 신론을 펼치셨을까? 아니다. 그분은 초연한 사변가가 아니고 민중과 어울려 사신 분이다. 곧, 율법을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지키지 못하는 천민, 예를 들면 세관원 및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기를 즐기신 분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율법을 배우고 꼬박꼬박 지키는 바리사이와 율사 같은 선민들이 예수님을 헐뜯을밖에. 저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선한 포도원 주인 비유요, 잃은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 비유이겠다. 하느님의 선하신 처분을 본받아 예수 당신도 천민을 끌어안는다는 것. 그러니 바리사이들과 율사들도 공덕과 보상만 생각하지 말고 천민들을 반겨 마땅하다는 것이다. 1절 그리스 원전에선, 일출시부터 일몰까지를 12등분한 이스라엘 시간 구분에 따라 새벽- 셋째 시간- 여섯째 시간- 아홉째 시간- 열한째 시간이라 한다. 우리말 역문에선 우리네 시간 구분에 따라 새벽- 아홉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로 고쳐 번역했다. 2절 데나리온은 로마 은화, 노동자의 하룰 품삭이 한 데나리온. 경우에 따라 더 받을 수도 덜 받을 수도 있었다. 토비트는 라파엘에게 하루 한 드락메(=데나리온) 이상 주었다. 힐렐 율사는 과거 노동자 시절에 하루 반 데나리온밖에 못 벌었다. 12절 새벽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열두 시간이나 일한 일꾼들의 항변과 주인의 답변은 그 구조와 내용이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의 큰아들의 항변과 아버지의 답변과 비슷한다. 13절 호격 “친구”는 신약성서에서 오직 마태오에만 세 차례 나오는데, 번번이 처신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을 예수님이 그렇게 부르신다. 16절 마태오는 현재의 서열이 종말에는 뒤바뀐다는 유행어를 19.30에 배열한 바 있다. 20.16에 같은 유행어를 또다시 수록하면서 어순을 바꾸었다. 즉, “첫째가 말째가 되고 말째가 첫째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까닭인즉, 온종일 일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은 일꾼들에게보다는 저녁때 한 시간만 일하고 너그러운 신심을 입은 일꾼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였기 때문이다. 유행어 시제가 미래인 점에 유의하라. 비유에선 한 시점에서의 하느님의 은혜로운 처사를 밝혔다. 그런데 유행어에선 종말 심판 때 하느님께서 말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시리라고 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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