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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 연중 제20주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18 조회수1,458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온 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1-14
그 무렵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뼈로 가득 찬 계곡으로 데리고 가시어 마른 뼈들을 살리시며, 이스라엘을 무덤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시겠다고 예언하게 하신다.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첫째가는 계명에 관한 대담

22,34-40은 분명히 마르 12,28-34를 옮겨쓴 것이다. 그런데 마태오가 사용한 마르코 복음서는 현행 마르코 복음서와는 조금 다른 표현들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을 말하면, 마태오가 주로 마르 12,28-34를 베꼈지만 부차적으로는 어록에 수록된 사랑의 이중계명 형태도 이용했을 수도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점치는 까닭은 단순하다. 세 공관 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마태오와 루카는 일치하나 마르코와는 일치하지 않는 요소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35-36절에는 율법학자”,“그분을 시험하여”, “선생님이 다같이 나온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그리고 율사와 예수께서 서로 칭찬하는 말들은 마태오와 루카에 다같이 나오지 않는다.

 

마태오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같다고 함으로써 이중사랑의 불가분 관계를 명시했다. 사랑의 이중계명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자들”, 곧 구약 계율들의 집약이요 기준이다. 사랑의 이중계명만큼 포괄적이지는 않지만, 마태오에는 그에 준하는 집약문들이 더러 있으니, 곧 다음과 같다.

 

-7.23: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해주기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주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입니다.”

9.13;12.7: “네가 원하는 것은 자비이지 제사가 아니다.”

23.23: “너희는 박하와 소외향은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저버리니 ...”

 

사랑의 이중계명은 예수님의 발설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로 우선 루카복음을 드는데, 실제로는 율사가 사랑의 이중계명을 발설했다는 것이다. 둘째 근거로는, 해외 유다인들이 사랑의 이중계명과 닮은 율법들의 집약문을 곧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외 유다인 가운데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복음서에서 보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어떻게 대할까?

 

복음서에 있는 사랑의 이중계명에는 유다교의 윤리관과는 질적으로 다른 두 요소가 들어 있다. 율법 비판 기능이 있다. , 사랑의 이중계명과 상통하는 율법은 상대화하거나 폐기된다. 구약과 유다교의 그 잡다한 계율을 그리스도인들이 지키지 않은 까닭이 여기 있다. 유다교에선 동족을 이웃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다교는 민족주의 종교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사마리아인도 이웃이요 이방인도 이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범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사랑의 이중계명에 내포된 이 두 요소는 예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율법의 집약문으로서 사랑의 이중계명은 그리스도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37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는 신명 6.5인용문이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레위 19.18인용문이다. 유다교에선 신명 6.5와 레위 19.18을 함께 인용한 사례가 없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 두 구절을 함께 인용하셨을 뿐 아니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람이 그 중요성에 있어서 같습니다하셨으니, 그 두 가지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라 하겠다.

이스라엘에서 살던 율사들도 잡다한 율법을 포괄하는 기본법을 논했다. 율사 힐렐은 황금률을 율사 아키바는 이웃 사랑을 꼽았다.

 

40

마태오는 마르 12,35-37ㄱ에 따라 22,41-46을 엮었다. , 마태 22.46은 마르 12,34을 옮겨썼다. 이 단락에는 역사적 예수와 초월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드러난다. 유다인들은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 이상적 정치를 실현할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럼 예수님은 메시아셨나? 예수님은 다윗의 후예로 태어나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평소에 정치적 군주 메시아로 처신하시지 않았다.

 

부활하심으로써 비로서 역사와 우주를 다스리는 초월적 주님, 초월적 메시아가 되셨다. 마태 28,18-20에는 주님 메시아의 전권과 전도명령과 편재가 극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일찍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예수와 초월적 주님 메시아를 내용으로 하는 신조를 만들었다. “육으로는 다윗의 씨에서 태어나시고,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이들의 부활 아래 하느님의 아들로 책봉되셨으니,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십니다”(로마 1,3-4).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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