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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21 조회수1,080 추천수3 반대(0) 신고

220821. 연중 제21주일.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연중 21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구원이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전해줍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바빌론 유배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이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온 민족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선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당신의 영광을 보리라.”(이사 66,18) 

 

오늘 <복음>에서도 같은 내용을 전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사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라는 어떤 사람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질문은 신앙의 궁극적 목표가 구원에 있음을 제시해줍니다. 그런데 ‘구원받을 사람이 적을 것을 것’인지에 대해 묻는 이 사람은 아마도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관심인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구원받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적어도 네 가지 면에서 충격적입니다.   

 

<첫 번째> 충격은 들어가는 ‘문이 좁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이는 언뜻 듣기에는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임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곧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라 해서 모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오히려 더 많은 이가 들어가는 “좁은 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이처럼 동서남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들어오는 문이 어찌 “좁은 문”일까요? 정말 당신의 문은 바늘귀처럼 좁은 문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문은 비록 좁지만 하나뿐인 문이 아니라, 각자에게 열려있는 수없이 ‘많은 문’인 것입니다. 곧 ‘길이신 당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기에’(요한 13,7)에 “좁은 문”이지만, 동시에 당신께 응답만 하면 누구든지 사방에서 몰려 온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오는 많은 “좁은 문”일 것입니다. 

 

이는 당신이 바로 “양들이 드나드는 문”(요한 10,8)이시며,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된 자, 낮추어 어린이가 된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마태 18,3-5)임을 말해줍니다.

 

  <두 번째> 충격은 ‘문이 닫힌다’는 사실입니다. 곧 ‘닫힌 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충격적인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루카 13,25)   이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는 좁지만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지만, 닫힌 다음에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 문은 나중에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지금 들어가야 하는 시급성을 다투는 문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재림의 때에 완성되겠지만, 이미 지금 여기에 와 있는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이라는 “좁은 문”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문을 들어가는 데는 그 어떤 특권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곧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라고 하여도 집주인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라고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주교님도 신부님도 수도자도 그 누구도 결코 예외가 없는 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충격적인 사실은 ‘문을 열고 닫는 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집주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버리면~”(루카 13,25), 우리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닫는 ‘집주인’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네 번째> 충격적인 사실은 ‘첫째와 꼴찌’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이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는 꼴찌가 되어도, 하느님 앞에서는 첫째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데는 꼴찌가 되어도, 하느님을 앞세우는 데는 첫째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듯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마태 5,6)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루카 13,24)   

 

주님!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꺾이고 사라지게 하소서. 문이 좁기에 붙들어 주는 당신을 꼭 붙들고 들어가게 하소서. 열린 문이신 당신이 저의 희망입니다. 아멘. 

 

(이 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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