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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안전운전이 보험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작성자김글로리아7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22 조회수95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2년 다해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안전운전이 보험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복음: 마태오 23,23-26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어느 권사님의 가정에 복면강도가 들어왔습니다. 잠자고 있던 권사님이 일어나 보니 복면을 한 사람이 가슴에 칼을 겨누며 말하기를 “조용히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태연한 자세로 강도의 손을 잡고 “하나님,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앞으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친 권사님은 강도에게 말하기를 “나는 ㅇㅇ 교회 권사인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라고 묻자 강도는 권사님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며칠 전에 교도소에서 출소해 나왔는데, 갈 곳은 없고 직장도 없는지라 손수레를 하나 구해서 장사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권사님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강도의 말을 들은 권사님은 손수레값을 주면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고 부디 성공하여 잘 살아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강도는 권사님의 말에 감동하여 복면을 벗고 엎드려 절하며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강도가 밖으로 나가자 권사님도 따라 나왔습니다. 날씨도 차가운데 들어가시라 했지만 괜찮다며 사거리까지 나온 권사님은 부디 성공하라며 손을 흔들어주며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즉시 그 옆에 있던 파출소에 들어가 신고하여 그 강도를 잡게 했습니다. 권사님의 얼굴을 본 강도는 어이없어서 입술을 깨물며 지긋이 떨었습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천사 같은 모습으로 기도해주며 성공하라 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들은 “저런 사람이 무슨 교회 권사야?” 하면서 욕했습니다. 권사님은 돈은 찾았지만 자비와 정의와 사랑은 잃고 말았습니다.

 

[출처: 외식, 위선에 관한 예화 모음, 한나, 네이버 블로그, ‘With the Lord’]

 

 

    물론 위 권사님은 그래도 정의는 이뤄져야 한다고 여겼겠지만, 누가 봐도 돈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에 더 큰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꼬집으십니다. 그들은 작은 벌레들은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마태 23,23)

 

 

    이는 마치 운전자 보험을 믿고는 난폭운전을 해 대는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보험이 안전 운전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없애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안전 운전이 자동차 보험을 면제해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안전 운전하려고 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리고 운전자 보험이 들어있어야 마음이 편안하여 더 안전 운전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긴장되어 운전이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톨릭교회는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와 같은 것들을 더 강조하며 십일조를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십일조를 통해 더 의로워질 수 있고 자비로워질 수 있고 신의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이라고 하신 말씀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중요하니 그물을 고치는 것은 나중에 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촉나라는 땅이 비옥하고 물자가 많기로 소문난 부국이었습니다. 일찍부터 촉나라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진나라 혜왕은 촉나라를 정벌하겠다는 야심은 가득했지만, 촉나라로 향하는 길은 대부분 좁은 벼랑이거나 산길이어서 진나라의 대군이 공격해 들어가기에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진나라 혜왕이 촉나라를 정벌하고 싶어 고민하다 신하들을 모아놓고 전략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 비옥한 촉나라 땅을 얻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소?”

모두 그 답답함에 말을 잊지 못했는데 이를 보던 신하 한 명이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강한 공격보다는 지혜로써 촉나라를 정벌해야 합니다.”

이에 진나라 혜왕이 그 방법을 묻자 신하는 대답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촉나라 왕은 물욕이 대단하다 들었습니다. 임금께서 대단한 선물을 할 것처럼 그 환심을 사고 허점을 파고들면 촉나라를 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진나라 혜왕은 곧바로 촉나라 왕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척 작전에 돌입합니다. 먼저 옥이 나오는 산에서 엄청난 큰 옥을 캐어 운반한 다음 황소를 조각합니다. 이후 옥으로 만든 소 안에는 금은보화와 비단을 가득 담고 촉왕에게 전할 것이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이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커다란 옥우를 보러 몰려들었고 촉왕도 이내 그 소문을 접합니다. 

    “진나라 혜왕이 짐에게 보낼 보물을 만들고 있다고? 기쁘네그려!”

 

 

    소문을 들은 촉왕은 너무나 들떴고 진나라 혜왕을 믿지 말라는 신하들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나라에서 사신이 도착합니다. 

    “저희 왕께서 촉나라와 진나라의 관계를 우호로 만들고, 촉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아마 이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큰 옥으로 만든 소로 그 도면과 목록을 들고 먼저 오게 되었습니다.”

보물 목록을 본 촉왕은 기뻐하며 말합니다. 

    “그 보물을 언제쯤 볼 수 있겠소?”

    “보물은 거의 준비가 되었지만 문제는 이곳으로 어떻게 운반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시다시피 촉나라로 통하는 길은 너무나도 협소하여 계곡에서 잃어버릴 위험이 많고 손상될 것 같아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해서 족히 2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아니, 귀국이 우리 촉국을 위해 보물을 옮기는데, 힘들면 안 되지. 산을 깎고 계곡을 묻어 큰길을 만들어주겠소.”

 

 

    이에 진나라 사신은 감사함을 표하며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날부터 촉의 백성은 큰길을 만들고자 죽을 힘을 쏟았습니다. 이에 신하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으나 보물에 눈이 먼 촉왕은 이를 다 무시합니다. 마침내 촉으로 향하는 큰길이 완성되자 진나라 혜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 옥우와 함께 이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병사 수만을 호위하게 하였습니다. 

 

 

    촉으로 향하는 진나라의 병사들은 큰 길로 진군할 수 있었고 촉의 도성 안에 쉽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도성 안에 들어온 진나라 군대는 돌변하여 촉나라의 군대를 쳐부수고 촉나라를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옥우라는 자신의 나라보다 훨씬 작은 보물에 눈이 멀어 큰 나라를 잃어야 했던 촉왕, 그를 향한 고사성어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영혼의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탐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내가 하는 모든 영성 생활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리옷 유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보험으로 들어놓으라고 하는 것이 선악과를 봉헌하는 일입니다. 곧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면 모든 것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하기에 탐욕에 물들어 그리스도를 버리는 일은 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무라시는 것은 십일조를 바치면서도 탐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들의 위선을 짚으시는 것이지 그것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올바른 정신으로 바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보험을 들었다고 난폭운전을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 보험을 들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보다도 우선 그 뿌리를 흔들리게 만드는 탐욕을 끊는 보험인 십일조를 봉헌하는 일입니다. 선악과를 바치지 않으면 에덴동산에서는 언제 쫓겨날지 모를 일입니다. 

 

   

 https://youtu.be/UYC-GXwUdcY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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