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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 성녀 모니카 기념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26 조회수1,190 추천수0 반대(0) 신고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1독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6

부르심받던 때의 처지

18-25절에 제시된 하느님 지혜의 방식이 이 단락에서는 고린토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적용되고, 2,1-5에서는 바오로의 복음선포 활동에 적용된다.

 

육으로 볼 때는 직역은 육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이라는 뜻이다(로마 1.3 참조).

 

29

어떤 육이든은 사람.

 

30

여기서 있다동사의 강한 의미를 감안하여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있으나마나한여러분을 선택하여(26-29)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하셨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 눈에 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눈에 드는(29.3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것이 여러분의 자랑거리다(로마 8.1 참조).

 

30절에 나오는 .” “성화”, “속량이라는 세 단어는 바오로의 중요한 개념들로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6.11에서는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과거의 삶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제) 씻겨졌습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었습니다!” 6.11에서 바오로는 성화를 말하면서 분명히 세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의와 성화와 속량을 말하면서 세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복음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4

14절의 서두가 생략되었다. 25.1과 비슷하게, “하늘나라는 여행을 떠나면서...”라고 시작했을 것이다.

 

16

첫째와 둘째 종은 주인이 맡긴 돈을 활용하여 큰 돈을 벌어들인다. 매우 생산적이다. 이는 주인에 대한 신의의 결과다. 셋째 종은 주인이 맡긴 돈을 안전하게 보관만 한다. 매우 비생산적이다. 이는 주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결과다.

 

19

신론적 관점에서 많은 기간은 하느님의 현상적 부재 기간을 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많은 기간이 지나는 예수님이 이승을 떠나신 때부터 종말에 내림하실 때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다. 마태오는 종말임박설보다 종말 지연설을 은근히 내비친다. “셈을 했습니다대신 말을 했습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같은 사례가 마태 18.23; 루카 16.2에도 있다.

 

21

주인은 첫째와 둘째 종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두 종이 벌어들인 돈이 많고 적음에 유의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신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금액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은, 첫째 종에게서 원금과 수익금을 거둬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원금과 수익금에다 셋째 종에게서 빼앗은 한 달란트마저 보태어서 되돌려준 사실로써 잘 드러난다(28). 이 주인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그러운 분이다(20,1-15 참조).

 

24

셋째 종은 주인이 맡긴 한 달란트를 활용하여 돈을 벌어들일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생산적인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주인의 됨됨이를 따져서, 자기 주인은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모진 부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테면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고, 비생산적인 신론에만 골몰했다. 하느님의 성품을 논하느라고 제 할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성서연구에 기호론을 도입한 장 들로르므 노교수의 기발한 착상이다. 만일 이 착상이 옮다면, 한평생 오직 신학에만 전념하는 신학자, 오로지 기도와 묵상에만 전심하는 수도자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겨 울고 이를 갈게될 것이다”(30).

 

29

29절은 여기저기 나타나는 유행어로서, 출전비평으로 볼 때 마르 4.25와 어록으로 환원된다. 원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개탄한 탄식이었을 것이다, 복음작가들은 이 탄식을 영성적으로 풀이하여, 지금 영적 부를 쌓는 사람은 종말에 더욱 부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종말에 더욱 초라해진다는 식으로 말한다.

 

30

30절의 처벌은 22.13의 처벌과 같다. 30ㄴ절의 절치 통곡은 8.12; 13,42.50; 22.13; 24.51; 25.30에 거듭나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군종신부님을 하셨던 신부님과의 대화입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에 신부님이 저만치에 있는 탁자에서 내가 아는 

형제님과 캔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으로 가다가 같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게 되었죠.

 

신부님이 이야기 도중에 군대 얘기를 하시며 웃으면서 파라호(이집트왕인 파라오가 아니라 강원도에 있는 호수이지만) 

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이거 내 얘기를 하는 것 아냐.'하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이름이 대군이기 때문입니다.  한자로 봐도 큰대자에 임금군자이니 이리봐도 저리봐도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저 인도에 가면 신들이 엄청많데요.'라고 말을 하였더니 신부님이 약간

찡그리는 얼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님은 귀신신 자에 아비 부자이니 말입니다.

그랬더니 신부님은 "내가 여러분들의 아버지입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오늘따라 그 신부님은 잘계시는지 궁금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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