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1 연중 제22주간 수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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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8-30 | 조회수56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4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주해 1절 2.14의 “자연적”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 같다. 1절에 나오는 그리스어 형용사는 본디 “육으로 이루어진”을, 3절에 사용된 형용사는 “육에 속한”을 의미하는데, 바오로는 구분 없이 “영적”에 대조되는 뜻으로 사용한다. 바로 앞 단락에서는 “자연적”과 “영적”이라는 형용사를 대조시켰다. 앞의 맥락과 3절을 보면 “육적”이라는 말은 “시새움과 싸움”이 지배하는 인간적 기준에 따라서만 살아가려는 태도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에 관한 바오로의 표현 중에는 육에 따라 살지 말고 영에 따라 살라는 권면들이 있는데 이를 참고하여 달리 표현해 보면 “육적 인간”이란 “육에 따라 사는 사람”을 “영적 인간”이란 “영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을 표현한다. 3절에는 육적 인간의 삶을 대표하는 예로 “시새움과 싸움”이 언급되는데, 이는 갈라 5.19-20에 열거된 “육의 일들”에도 나오는 단어들이다. 4절 1.12에 비해 파멸이 둘만 언급된다. 실질적으로 고린토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킨 파멸로, 고린토 공동체를 처음 세운 바오로와 그의 뒤를 이어 공동체를 지도한 아폴로, 이 두 사람을 빙자한 파멸이 조성되었던 것 같다. 6절 이사 5.1-61.3 참조. 9절 또는 “통역자”, “하느님의 동료 일꾼들”이란 말은 “하느님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겠다. 여기서 강조점은 “하느님을 위해 일한다”라는 데 있지 않고 복음선포자들이 우열 없이 “동료”라는 데 있다. 복음선포자들은 자신의 일을 하는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밭(건물)에서 일하는 일꾼/봉사자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결코 자기 자랑을 해서도 안되고 또 이 “하느님의 일꾼들”을 빙자해서 신도들이 파당을 이루어서도 안된다고 바오로는 강조하여 가르친다. 복음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주해 38절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원문에서는 “열이 부인을 버리고 떠나갔다” 한다. 열을 일종의 귀신으로 본 것이다. 당대 사람들은 귀신이 붙어서 병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몬의 장모가 시중들었다는 것은 음식접대를 했다는 뜻이다.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신 치유이적사화는 당대 그리스인들의 치유이적사화와 그 서술양식이 같다. 그리스인들은 치유이적을 이야기할 때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실증,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엮었다. 구마 및 치유 이적의 뜻인즉, 하느님의 다스림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신적,육신적 고통에서 사람을 해방하는 안식일법이나 정결법보다 중요하다. 귀신 따위를 겁낼 것 없다는 가르침이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예수님의 활약상을 요약한 집약문 역시 마르 1,32-45를 옮겨썼다. 41절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는 병행문 마르 1,34에는 없는 루카의 가필. 전도여행 루카는 마르 1,35-39를 베끼면서 많이 손질했다. 42절 마르 1.35에서는 “새벽 몹시 어두울 때에”. 마르 1.35에서는 “기도하셨다”는 낱말이 붙여 있다. “군중”은 마르 1.36에서는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나섰다. 43절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는 직역하면 “하느님 나라를 복음 전해야 합니다” 44절 마르 1.39에 의하면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활약하셨는데, 이는 역사적인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루카는 활동무대를 유다로 고쳤다. 예수시대의 유다지방은 이스라엘 남부지역에 불과했으나 루카는 이스라엘 전역으로 알아들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4복음서중 제일 첫 번째로 기록된 것은 마르코복음입니다. 오늘의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구마.치유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서도 전해야 하신다는 기록입니다. 루카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쓰여졌는데 아주 세밀한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고 마르코복음은 첫 번째 기록이라서 그러는지 조금 글이 메끄럽지를 못합니다만 오늘 루카복음은 마르코복음과 겹치기에 아주 짤막하니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지만 표시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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