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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31 조회수997 추천수4 반대(0) 신고

세상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일 것입니다. 그것도 유다와 같은 이와의 관계 말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유다도 같은 제자로 뽑으시고 같이 동고 동락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가서 예수님을 배반하게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의 배반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가 배반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도 위험한 순간이 되어서 그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는 참회를 하고 다시 예수님의 제자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어찌보면 두 사람의 신앙 여정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있었지만 인간이라는 약함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는 그런 행위 속에서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는 그 중심을 하느님에게 두었기에 그는 다시 수석 사제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주님의 가장 옆에서 돈을 관리하던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그도 상당히 신뢰하는 제자였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똑똑함과 영리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마음속에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사사건건 주님의 제자들과 주님과도 부딛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당신의 사목일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를 자신의 제자로서 여기고 받아들이고 살아가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또한 공생활 중에 항상 마음이 무거우셨을 것 같아요. 몸은 나와 같이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유다를 보면서 마음이 어떠셨을지? 유다의 이중적인 마음이 형제들과 다툼 혹은 갈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당신의 길을 걸어 가십니다. 속이 속이겠어요? 가장 가까운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시는 주님입니다. 공 생활 중에 그의 배반을 모르셨을 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를 품어주고 걸어가십니다. 

 

그런 찢어지는 마음의 아픔을 안고 당신은 공생활을 주도적으로 걸어가신 분이 예수님의 삶입니다. 주님은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당신 사명을 수행하십니다. 

 

그 수행을 기쁜 소식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공생활 전반을 보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예수님의 집안 사람들, 제자들 안에서의 다툼, 그것에 초연하게 걸어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 초연함이 진정 저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내가 예상치 않은 것이 나에게 다가오고 괴로울 때 주님의 초연함을 배우고 익히라는 것이 오늘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아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주시네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단어가 어찌 보면 그 초연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는 모습, 그 속에서 그분의 초연함이 드러나는 것이고 삶의 무게를 정리하는 곳이라고 봅니다. 

 

왜 신부님들이 새벽에 기도하시고 묵상하시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연함이 어찌보면 초월적인 것으로 넘어감입니다. 인간의 몸은 땅에 있으나 영적인 것으로 넘어감이 초월적인 존재로 넘어감입니다. 

 

그것이 있기에 하느님의 일을 주님은 하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당신 사업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하신것이 초연함이고 초월적인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힘을 받아야 인생의 파고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힘으로 오늘 하루 힘차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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