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 연중 제22주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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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9-01 | 조회수80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해 바오로 자신과 고린토 공동체 3장에서는 복음선포자들은 그리스도 신앙인 공동체의 “봉사자들”이며 하느님의 “동료 일꾼들”이라고 천명했는데, 이제 복음선포자들의 “신원의식”을 바오로 자신과 공동체와의 관계에 직접 적용시킨다. 1절 “하느님의 신비들”이란 그전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계시된 하느님의 계획을 의미한다. 이 심오한 계획을 하느님은 “영”을 통해 복음선포자들에게 계시하셨다(1,1-16 특히 7-10 참조). 3절 “사람들의 날”이라는 표현은 1.8의 “주 예수의 날” 3.13의 심판의 “그 날”과 대조가 된다.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주해 단식논쟁 – 새것과 헌 것 루카는 마르 2,23-28을 옮겨썼는데 그 중 2.27을 뺀 것이 특이하다. 33절 “기도하며”는 루카의 가필.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이란 없으니 단순히 바리사이들의 무리라고 보겠다. 그들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디다케 8,1) 34절 마르 2.19 참조. 구약에서는 혼인잔치 상징으로써 종말론적 구원을 서술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시대야말로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시기라 하신다. 상징어의 뜻인즉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종말론적 구원이 이룩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본디 19ㄱ절로써 충분하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에서 만들어 덧붙였다하겠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예수시대에는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았는데 스승이 돌아가신 다음 교회시대에는 신도들이 단식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자 19ㄴ-20절을 만들어 덧붙였을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단식 동기인즉 신랑이 떠나 혼인잔치가 끝났기 때문에, 곧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흥이 깨졌기 때문에 단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1세기 교회에는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언제 단식했던가? 짐작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예수께서 운명하신 금요일에 단식했을 것이다. 1세기 말엽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36절 마르 2.21참조.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온 이중단절어다. 그 표현이 상징적이므로 이중상징어라 해도 좋다. 이 상징어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체험을 드러내기 때문에 생활의 지혜 혹은 인생 예지라 할 수 있다. 새것은 강하고 헌 것은 약해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상징어는 무엇을 뜻할까?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혁신적이고 위력적이므로 그에 맞갖은 “회개” 역시 새롭고 힘차야 한다는 것이리라. 39절 39절은 루카가 수집하여 덧붙인 말인데 새 포도주보다 묵은 포도주를 더 치는 주도(酒道)를 연상시킨다. 예수님의 혁신적이고 위력적인 가르침보다 유다교 전통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까?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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