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 연중 제23주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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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9-03 | 조회수851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면 누가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느냐고 한다. 제2독서 <이제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으십시오.>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주해 10절 “자식”을 얻었다는 말은 입교시켰다는 뜻이다(1고린 4.15 참조). 15절 바오로는 “그가 ...그대를 떠나게 된 것은”하며 노예의 도주를 매우 부드럽게 표현하고, 그 일로 말미암아 오히려 오네시모가 필레몬과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새로운 유대를 맺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임을 암시한다. 16절 여기서 바오로는 오네시모에게 벌주지 말 것을 함축적으로 요쳥한다. 오네시모를 법적으로 풀어주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형제로 대하라는 말이다. 17절 이제 바오로는 명령법을 사용하면서 오네시모에 관한 부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동지”는 여기서 같은 신앙에 동참한다는 뜻이지만, 고대 상업용어로서는 함께 영업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주해 26절 26절은 그 변체가 마태 10.37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루카와 마태오를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점이 있는데, 루카에서는 가족을 미워하라고 하시고 마태오에서는 예수보다 가족을 덜 사랑하라고 하신 점이 돋보인다. 예수님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비교급이 없기 때문에 “덜 사랑하다”를 “미워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례가 잦다. 가족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효도를 강조하셨다. 그러나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셨다. 혈연관계보다 추종을 더 소중히 여기셨다. 가족을 떠난 제자들에게 종말 축복을 약속하셨다. 27절 십자가를 메라는 단절어는 두 갈래로 구전되어 한 전승 어록에,또 한 전승은 마르 8.34에 수록되었다. 마르 8,34를 기준으로 단절어의 원형을 복구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누가 내 뒤를 따라올라거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28절 망대와 전쟁 이중비유는 루카 특수자료. 망대를 세우려면 미리 경비를 계산하고 전쟁을 하려면 미리 승산을 따져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려면 끝까지 따를 수 있을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기 때문이다. 33절 십자가를 메라는 단절어는 두 갈래로 구전되어 한 전승은 어록에, 또 한 전승은 마르 8.34에 수록되었다. 마르 8,34를 기준으로 단절어의 원형을 복구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누가 내 뒤를 따라올라거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오늘 복음이 나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았습니다. 과연 ‘예수님 말씀대로 살수 있을까?’입니다. 임금이 싸우러갈 때 “상대의 수효가 많고 이길 승산이 없으면 평화협정을 맺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인데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강감찬 장군의 거란(중국)과의 싸움에서 귀주대첩, 이순신의 왜(일본)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수적으로 엄청나게 불리하고 물리칠려면 너무나 힘든 싸움인데도 평화협정을 하려고 하지 않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싸움은 전혀 승산이 없는 전투였습니다. 영국의 어떤이가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전세계의 해전에서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하였답니다. 질 것 같은 싸움도 우리는 싸워서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적과의 평화협정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북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갈라졌다가 완전히 멸망한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켜야하지만 우리와 우방국인 미국과도 잘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도 군인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 보십시오. 슬그머니 자위대를 만들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따르려면 나의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하는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메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에 저는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며 저를 돌이켜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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