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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 연중 제23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05 조회수1,184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6,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

원문에서는 1절 첫 단어가 감행하다라는 동사로 시작되는데, 매우 꾸짖는 어투다. 바오로가 세속법 자체를 거부한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예컨대 로마 13장을 보면 그는 통치자들이 선행자에게 상을 주고 악행자에게 벌을 줄 임무가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그리스도 신앙인이 비신앙인과 소송을 할 경우 세속 법정의 도움을 요구하는 것을 명백히 금지하지는 않는다(사도 25.10 참조). 여기 6장에서는 문제삼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인끼리 문제를 가지고 세속 소송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외롭지 못한 이들”, “불의한 이들이란 내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지 못한 이방인(이교인)을 의미한다. 사실 6절에서 바오로는 의롭지 못한 사람들불신앙인들이라고 다시 풀어 말한다. 반면에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거룩한 이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품위와 의무를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성성(聖性)은 하느님께 봉헌되었다는 데서 성립한다.

 

신약성서 저자들에게서 사람이 거룩하다고 불리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자신이 윤리적.종교적으로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사람을 당신 백성의 일원으로 부르고 사명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이 소명은 동시에 거룩한 생활을 요구한다.

 

2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라는 문구가 6장에 눈에 띠게 자주 등장한다. 바오로는 여기 2-3절에서 유다교와 초기 그리스도인 묵시문학에서 따온 종말론적 가르침을 도입한다. 바오로 이전에 이미 유다인들에게는 의인들이 민족들을 심판하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종말심판 때 그분을 따른 이들도 그 심판에 동참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이 종말심판은 사람들뿐 아니라 천사의 권세들을 포함한 온 우주에 미친다. “천사들에 대한 심판이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유다 묵시문학적 표현이 자리잡고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을 불의한 이들이라고 하는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라고 부른다.

 

5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고린토인들을 비꼬아 말한다.

 

7

직역하면 패배실패”.

 

예수의 산상설교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스도 신앙인이라 자처하면서 자기 권리를 관철하기 위해 서로 소송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실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받아들여졌다고 믿는 사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권리를 관철할 필요가 없다. 바오로에게 있어서 자신의 권리 포기를 결코 수동적인 약함이 표시나 악에의 굴복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사랑의 적극적 표현이다.

 

8

8.12 참조.

 

9

9-11절의 두 가지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세례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종말심판의 관점이다. 9-10절에는 악행목록이 언급된다.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갈라 5,21에서도 악행목록과 함께 언급된다.

 

11

이제의 대조적 의미를 함축하면서 세 번이나 그러나가 반복됨에 유의하라. 11절은 세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바오로의 권면은 믿음과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실존에 뿌리내려 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열두 제자를 뽑으시다

루카는 주로 마르 3.3-19를 따르면서 더러 손질했다. 제자들의 명단은 따로 구전에서 수집했을 가능성이 있다.

 

12

12절은 산으로 떠나기란 빼고 죄다 가필.

 

13

원래 제자사도는 다른 개념이다. 이승의 예수를 따라다니던 이들이 제자들이요, 부활한 예수를 뵙고 그분에게서 부활선포의 사명을 받은 이들이 사도들이다. 그런데 루카는 종종 열두 제자를 사도들이라 한다.

 

14

여기 야고보와 요한은 제베대오의 아들들. 이어 나오는 명단은 마르 3,18-19와 같다. 다만 타대오대신 야고보의 유다라는 것이 다른데. 야고보의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 밝힐 길이 없다.

 

군중이 모이다

루카는 마르 3,7-13ㄱ을 많이 손질하여 6,17-20ㄱ을 엮었다. 마르코에서는 이 대목이 예수님의 활약상을 요약한 집약문이지만, 루카에서는 평지설교의 상황 서술이다.

 

17

평지에서 가르치셨다 하여 평지설고”, “에서 가르치셨다 하여 산상설교라 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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