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 연중 제23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 |||
---|---|---|---|---|
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9-05 | 조회수1,18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제1독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주해 1절 원문에서는 1절 첫 단어가 “감행하다”라는 동사로 시작되는데, 매우 꾸짖는 어투다. 바오로가 세속법 자체를 거부한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예컨대 로마 13장을 보면 그는 통치자들이 선행자에게 상을 주고 악행자에게 벌을 줄 임무가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그리스도 신앙인이 비신앙인과 소송을 할 경우 세속 법정의 도움을 요구하는 것을 명백히 금지하지는 않는다(사도 25.10 참조). 여기 6장에서는 문제삼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인끼리 문제를 가지고 세속 소송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외롭지 못한 이들”, “불의한 이들”이란 내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지 못한 이방인(이교인)을 의미한다. 사실 6절에서 바오로는 “의롭지 못한 사람들”을 “불신앙인들”이라고 다시 풀어 말한다. 반면에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거룩한 이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품위와 의무를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성성(聖性)은 하느님께 봉헌되었다는 데서 성립한다. 신약성서 저자들에게서 사람이 거룩하다고 불리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자신이 윤리적.종교적으로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사람을 당신 백성의 일원으로 부르고 사명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이 소명은 동시에 “거룩한 생활”을 요구한다. 2절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라는 문구가 6장에 눈에 띠게 자주 등장한다. 바오로는 여기 2-3절에서 유다교와 초기 그리스도인 묵시문학에서 따온 종말론적 가르침을 도입한다. 바오로 이전에 이미 유다인들에게는 의인들이 “민족들을 심판하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종말심판 때 그분을 따른 이들도 그 심판에 동참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이 종말심판은 사람들뿐 아니라 천사의 권세들을 포함한 온 우주에 미친다. “천사들에 대한 심판”이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유다 묵시문학적 표현이 자리잡고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을 “불의한 이들”이라고 하는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성도” 라고 부른다. 5절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고린토인들을 비꼬아 말한다. 7절 직역하면 “패배”는 “실패”. 예수의 산상설교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스도 신앙인이라 자처하면서 자기 권리를 관철하기 위해 서로 소송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실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받아들여졌다고 믿는 사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권리를 관철할 필요가 없다. 바오로에게 있어서 자신의 권리 포기를 결코 수동적인 약함이 표시나 악에의 굴복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사랑의 적극적 표현이다. 8절 8.12 참조. 9절 9-11절의 두 가지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세례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종말심판의 관점이다. 9-10절에는 악행목록이 언급된다.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갈라 5,21에서도 악행목록과 함께 언급된다. 11절 “전”과 “이제”의 대조적 의미를 함축하면서 세 번이나 “그러나”가 반복됨에 유의하라. 이 11절은 세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바오로의 권면은 “믿음과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실존”에 뿌리내려 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주해 열두 제자를 뽑으시다 루카는 주로 마르 3.3-19를 따르면서 더러 손질했다. 제자들의 명단은 따로 구전에서 수집했을 가능성이 있다. 12절 12절은 “산으로 떠나기”란 빼고 죄다 가필. 13절 원래 “제자”와 “사도”는 다른 개념이다. 이승의 예수를 따라다니던 이들이 제자들이요, 부활한 예수를 뵙고 그분에게서 부활선포의 사명을 받은 이들이 사도들이다. 그런데 루카는 종종 열두 제자를 사도들이라 한다. 14절 여기 야고보와 요한은 제베대오의 아들들. 이어 나오는 명단은 마르 3,18-19와 같다. 다만 “타대오”대신 “야고보의 유다”라는 것이 다른데. 야고보의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 밝힐 길이 없다. 군중이 모이다 루카는 마르 3,7-13ㄱ을 많이 손질하여 6,17-20ㄱ을 엮었다. 마르코에서는 이 대목이 예수님의 활약상을 요약한 집약문이지만, 루카에서는 “평지설교”의 상황 서술이다. 17절 “평지”에서 가르치셨다 하여 “평지설고”, “산”에서 가르치셨다 하여 “산상설교”라 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