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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 연중 제23주간 수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06 조회수980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7,25-31
형제 여러분,
25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26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5

원문에서는 하느님 앞에서라는 말이 문장의 제일 끝자리에 놓여 강조된다.

 

25-35(또는 25-38)에서는 독신생활 문제를 다룬다. 그 첫 단락인 25-28절에서는 동정생활을 하던 남녀들의 결혼 여부를 둘러싼 문제를 다룬다.

의역하면 주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받아 믿음직하게 된 사람으로서”, 이 말에는 하느님이 자비를 베풀어 자기에게 사도직을 믿고 맡기셨다는 바오로의 자의식이 엿보인다.

여기서는 바오로 자신의 발언이 10절에서처럼 명령이거나 주님의 지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라고 한정한다.

 

28

동정자가 결혼하면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의역: “이 말은 내가 여러분을 (그런 시련을 당하지 않도록 아껴서 하는 말입니다.”

 

29

29-31절에서는 곧 지나가 버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에 대해 다룬다. 그 다음 32-35절에서는 이런 자세를 7장의 공통주제인 결혼문제와 관련시키며 독신생활을 권장한다. 앞 단락의 처음과 끝에서 그 중간에 있는 권고에 대한 종말론적 이유를 제시한다. 이 단락은 바오로 신학의 종말론적 특징을 간결하게 제시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현재를 하느님의 다스림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종말로부터 거꾸로 조명하며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이 권면은 흔히들 오해하듯이 괴로운 현실에 눈감고 환상적인 미래로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하느님의 위대한 권능이 결정적으로 드러날 미래의 종말에 대한 희망을 갖고 현실을 직시하며 굳세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현실의 갖가지 근심걱정에 파묻혀 자포자기하거나 또는 반대로 일시적 기쁨에 취하여 그것이 마치 전부인 양 살아가는 자세를 경계하는 권고다.

 

26: 10.11 참조. 여기서 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질적으로 특별히 규정된 시간, 정해진 시점, 호기(好機)들을 의미한다. 29절에서 그 때는 주님 재림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바오로의 관점에서는 이 때가 매우 임박했다.

 

30

스토아 철학자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감정의 동요를 가능한 한 억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바오로는 오히려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우시오라고 적극적으로 가르친다. 여기서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말한다, 종말 완성의 날에 대한 희망은 현실의 고난을 견디어낼 힘을 줄 뿐 아니라 현재 누리는 즐거움에 도취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0

6.20-49와 마태 5.3-7.29에는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이 집성되어 있다. 두 복음사가는 그것을 어록에서 옮겨실었는데, 제각기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가감,수정했다. 루카는 어록을 대체로 충실히 옮겼고 마태오는 많이 고쳤다.

 

행복선언

마태오의 산상설교와 루카의 평지설교 모두 행복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마태오에는 아홉 가지 행복선언, 루카에는 네 가지 행복선언이 있다.

 

어록에는 루카의 경우처럼 네 가지 행복선언이 있었다. 그렇다면 마태오는 어록을 옮겨쓰면서 다섯 가지 행복선언을 참작, 첨가하여 아홉 가지를 만들었겠다.

 

어록의 네 가지 행복선언 가운데 처음 세 가지는 예수 친히 발설하셨고 마지막 한 가지는 전승자 아니면 어록작가가 가필했다는 게 신약학계의 통설이다.

 

예수께서 친히 발설하신 삼중 행복선언의 뜻을 밝힐 차례다. 그분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라고 외치셨다. 지금은 숨어 계신 하느님께서 곧 임금님으로 나타나 선정을 베푸실 때가 임박했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고 배부르게 되며 웃게 될 것이다.

 

못난 자들이 비록 지금은 비참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처지가 아주 달라지겠기에 그들은 복된 것이다. 선하신 하느님이 곧 왕도를 펴시면 지금의 참상이 크나큰 축복으로 뒤바뀌겠기에 그들은 복된 것이다.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이사 61.1 참조. 예수님도 가난한 이들을 아끼셨지만(마르 10.21;12.43) 루카는 예수님의 그런 면을 한결 더 강조했다.

 

21

그대들은 배부르게 되리니

이사 49.10 참조.

 

그대들은 웃게 되리니

이사 25,6-9 참조.

 

22

마지막 행복선언은 박해받던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만들어 덧붙였다. 사실 마지막 행복선언은 그 문체나 내용이 삼중 행복선언과 사뭇 다르다. 삼중 행복선언이 운문이라면 마지막 행복선언은 참상을 길게 늘어놓는 산문이다. 그리고 삼중 행복선언에는 인자 때문에박해를 받는 자세가 요구된다. 삼중 행복선언에서는 무조건 하느님의 나라를 약속하는 데 비해 마지막 행복선언에서는 정당한 보상을 약속한다. 상중 행복선언은 신론(神論)인 데 비해 마지막 행복선언은 그리스도론이다.

 

내쫓고는 유다교 회당에서 추방하는 것을. “이름을 사악하다고 내치면은 유다교인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을 뜻하리라.

 

불행선언

네 불행선언은 루카복음에만 있다. 루카는 네 행복선언과 짝을 맞추어 네 불행선언을 덧붙였으리라.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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