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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 연중 제24주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10 조회수998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7-11.13-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주님께서는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제사 지내는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려시다가 모세의 애원을 들으시고 재앙을 거두신다.

 

 

 

 

 

 

 

 

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1,12-17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하느님의 자비로 복음을 선포한다

사목서간이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면 여기서 말하는 바오로는 역사상 실제 바오로가 아니라, 오히려 필자가 전승을 통해 알게 된 관념상의 바오로다. 따라서 이 문단은 바오로의 전기와도 같다. 이 전기에 의하면 당시 교회는 바오로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회심하여 믿게 된 죄인들의 본보기로 공경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사목서간의 바오로 모습은 그의 유일무이한 사도직 권위에 역점을 두고 당대 교직자와 신도들의 모범으로 부각된다.

 

13

바오로의 생애에는 뚜렷한 전환점이 있었다. , 그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개종하고 사도직을 맡았다. 바오로 친서들에 비해 비그리스도적 과거를 더 준엄하게 비판하는 한편, 바오로의 모독을 무지에서 나온 것으로 변명한다. 역사상의 바오로 자신은 오히려 죄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실상 친서의 바오로는 유다교인으로서의 자기 과거를 불신앙이나 무지 또는 모독의 생활로는 보지 않았다.

 

그의 개종은 죄와 불경에서 벗어나는 전환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과거에 경건한 유다인으로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개종은 다만 유다교인의 처지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미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상, 과거 유다인으로서 종사했던 가치는 필요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바오로의 개종을 필자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개종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보고 소개된다.

 

15

이 말씀은 확실하다란 말이 어떤 중요한 주장을 하는 대목의 앞이나 뒤에서 구원에 관한 선언이나 신앙생활에 관한 일들을 강조한다. 이 표현을 보면, 사목서간이 집필된 시대의 교회가 전통적인 가르침을 근거로 교리나 실생활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은 확실하다고 강조한 부분은 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썼을 때 루카 15.2;19.10의 말씀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 죄인들 중 첫째라는 말은 죄가 가장 많았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를 박해하던 죄인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다.

 

17

17절은 전례 때 외우던 영광송을 옮겨 쓴 것 같다. 하느님을 모든 세기의 왕이라고 한 것은 그분을 역사의 주재자로 고백하는 말이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

비유의 상황묘사는 루카의 가필. 사실 1-2절은 5,29-20을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또한 3절의 그러자 ...함께 이야기하시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다역시 루카의 전형적인 문체다. 이처럼 루카가 1-3절 전부를 형성, 첨가했지만, 그는 본디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발설하신 상황을 정확히 도로 밝혀 내었다.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비유

이 비유도 앞의 비유처럼 본디부터 잃음과 찾음- 되찾음과 기쁨- 하느님의 기쁨 순으로 엮여 있었을 것이다.

 

6

6절은 루카의 가필이리라. 그 까닭인즉 병행문 마태 18,12-14에는 6절이 없을뿐더러 루카의 애용어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관복음 가운데 마태 11.19를 제외하면 오직 루카복음에만 무려 열다섯 번이나 나온다. “이웃은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 9.8을 제외하면 루카 14.12; 15,6.9에만 나온다. “불러모으고는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 15.16을 제외하면 루카 9.1; 15,6.9; 21.13; 사도 5.21; 10.24; 28.17에만 나온다. “함께 기뻐하다는 네 복음서 가운데 루카 1.58;15,6.9에만 나온다.

 

7

7절은 대체로 루카가 어록에 수록된 마태 18.13을 옮겨쓰면서 명사 회개”, 동회개하다를 덧붙인 것이다. 명사 회개는 네 복음서 가운데 마르 1.4; 마태 3,8.11을 제외하면 오직 루카 3,3.8; 5.32; 15.7;24.47에만 나온다. 특히 회개가 필요없는 의인들이란 문구의 낱말 하나하나는 루카 5,31-32에 더 나온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동사 회개하다는 마르코에 두 번. 마태오에 네 번 나오는 데 비하여 루카복음에 아홉 번, 사도행전에 다섯 번 나온다.

 

9

9절 전반부는 루카의 가필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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