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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12 조회수797 추천수1 반대(0) 신고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4세기 중반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터키의 안타키아)에서 태어나 독실한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았다. 수도자들과 함께 엄격한 극기 생활을 하던 그는 은수자를 본받아 광야에서 기도와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자선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다가 사제품을 받고 주로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임명된 그는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악습에 젖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심지어 황제나 황후에게도 잘못된 점을 거침없이 지적하였다. 그 때문에 성인은 유배 생활을 하다가 407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탁월한 설교로 금구’(金口: 황금의 입)라고도 불리는 그는 설교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31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2

몸과 지체들비유는 창작이 아니다. 유명한 우화에 기원전 490년경 메네니우스 아그림파라는 사람이 이 비유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많은 고대 작가도 이 비유를 사용했다. 바오로 시대에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를 거대한 몸으로 생각하여 수많은 존재의 상관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바오로의 독창성은 이를 놀랍게도 그리스도께 적용한다는 점이다.

 

교회도 그렇습니다가 아니고 그리스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여러분 하나하나는 그 지체들입니다라는 27절로 보아 여기 12절의 그리스도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표현이다. 몸은 단지 여러 지체의 집합만이 아니라 그 지체들을 하나로 묶어 하나인 생명체일 수 있게 하는 중심원리로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당신 인격 안에서 당신을 믿는 수많은 신앙인 무리를 하나인 생명체처럼 묶어 하나인 살아 있는 공동체로 존속하게 하는 중심원리로 이해한다. 여기서 우리는 바오로의 독특한 교회관을 본다. 그에게 있어 교회는 개개 그리스도인의 집합체가 아니라. 각 부분이 긴밀히 통일 조직되어 하나인 생명 유기체를 이루듯이 개개의 신앙인이 그리스도와 인격적 결합을 하여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생명 공동체다.

 

13

13절은 갈라 3.28과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큰 차이점도 있는데 두 가지만 든다면 갈라 3,28에서는 유다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으며,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다라고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비해 여기서는 유다인이든 헬라인이든,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모두가 다 한 몸을 이룬다며 긍정문으로 표현된다. 문맥을 보면 13절에서는 다양성을 긍정할 뿐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은 전체를 위해 필요하다고까지 한다.

 

반면에 갈라 3.38의 문맥은 차이점을 부인한다. ,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신앙을 통하여 갈라디아의 그리스도 신앙인들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들이 되었다라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들 사이에 종교적 사회적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참고로 , 갈라 3.28남성과 여성이 없으며 ...”에 해당하는 부분이 여기 13절에는 없다. 이 점은 11,2-10; 14,33-35의 맥락, 즉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아 주려는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한 영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비록 그 예식이 물로 거행되지만 궁극적으로 영 안에서이루어진다. 13절의 첫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한 영이 강조되는데, 이는 13절이 속한 단락을 앞 단락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한 몸 안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며라는 뜻이다. “안으로라는 전치사는 세례의 결과 수제자가 누군가에 인격적으로 결합함을 강조한다. 이 결합은 동등한 두 상대방의 결합이 아니라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가 잠기듯이 수제자가 자신의 전 삶을 예컨대 그리스도 안으로잠기게 하는 결합이다. 이것은 다음 예문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바오로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모세 안으로세례를 받았다“: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를 받았다”:“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세례를 받았다

 

영을 마셨다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다음 예문들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영이 부어진다”: “우리에게 선사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습니다

 

14

14-26절에서는 여러 지체와 하나인 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간접적으로 이목을 끄는 은사들을 둘러싸고 고린토 공동체에서 생긴 잘못된 두 생각을 바로잡는다. 15-20: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사에 비해 자신이 받은 은사만이 열등하다는 생각. 21-26: 자신이 받은 은사만이 특별하고 풍요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은사는 받았다 해서 더 중요한 그리스도인은 아니고, 덜 눈에 띠는 은사를 받았다 해서 덜 중요한 그리스도인은 아니라고 바오로는 가르친다.

 

28

28절은 바오로의 글에서 드물지 않게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다. 사도.예언자, 교사들은 사람들의 직함이고 그 나머지는 행위로 표현된 은사들의 명칭인데, 직함들에만 순서가 언급된다. 8-10절과 비교해 볼 때 중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영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이 주어로 되어 있다.“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세우신 것에 관해 언급한다. 처음이 세 직함에 대해 말하면서 순서를 언급한다. “사도들,교사들,도와줌, 지도등 네 가지가 8-10절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세우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하느님의 결정을 매우 강조하는 동사다.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셨다고 함으로써 바오로는 교회의 직무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함을 긍정한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관해 에페 3.20;3.5;4.11;묵시 18.20 참조.

 

사도 13,1에 의하면 안티오키아 교외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도와줌지도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신약성서에 단 한 번씩 나온다. “지도라고 번역된 말은 본디 배를 조종하는행위를 뜻했다.

 

14장에서 문제가 되던 갖가지 언어들의 은사를 예언의 은사에 비해 열등하다고 밝히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서 갖가지 언어들의 은사가 끝자리에 있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8-10절에서도 이 은사는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은사와 함께 끝자리에야 언급된다.

 

29

29-30절에서는 고린토 신자들에게 교회 안에 있는 직무들과 은사들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한다.

 

능력들(기적들)을 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31

열망하십시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법적으로는 명령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직설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과 14.1을 참조해 볼 때 명령법으로 보는 것이 낫다.

 

직역하면 넘처남에 따라 특출하게 특별하게인데, 어떤 이들은 가장 훌륭한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다

나인의 젊은이를 되살리신 소생이적사화는 루카복음에만 전해온다. 이 사화는 엘리야 예언자가 사렙타 지방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렸다는 소생이적사화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고라고 하신 말씀을 뒷받침하려고 꾸민 이야기다. 소생이적사화는 자연이적사화의 일부일만큼 역사적 사실을 따질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뜻을 찾도록 할 것이다. 사건사를 거론할 것이 아니라 의미사를 파악해야 한다. 11-17절의 양식은 상황묘사,기적적 소생의 말씀, 소생 실증,목격자들의 경탄사로 짜여 있다.

 

11

나인은 나자렛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나자렛에서 걸어서 두어 시간 거리.

 

14

이스라엘에서는 시신을 관에 넣지 않고 그냥 들것에 얹어 메고 갔다. 반대로 그리스인들은 관을 사용했다.

 

16

예수께서는 예언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또 그렇게 자처하시기도 했다.

 

17

유다는 이스라엘 전역을 가리키는데, 루카는 여러 번 같은 용법을 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앞글 저의 글에서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보내주신 지도를 나름대로 한자어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린적이 있는데 그뜻을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하는 잘 알겠습니다란 지도란 말이 떠올라 그렇게 말씀을 드렸으나 오늘 독서 주해를 하다보니 신약성서에 한 번 나오는 지도란 그리스어 단어를 번역한 것인데 본디 이는 배를 조종하는 행위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배에 주님이 타시고 선장은 베드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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