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9. 유다의 승리 / 유다 마카베오의 활약[2] / 2마카베오기[2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13 조회수950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9. 유다의 승리(2마카 12,26-45)

 

이처럼 여러 지역에서 승리를 한 뒤에 유다는 카르나임과 아타르가티스 신전으로 진군하여, 그곳에서 적 이만 오천 명을 죽였다. 아타르가티스는 풍요 다산을 관장한다고 시리아인들이 믿던 큰 여신이다. 이렇게 그들을 쳐 이겨 부순 다음, 온갖 민족이 사는 갈릴래아 호수 남동쪽 3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견고한 성읍 에프론으로(1마카 5,45-51 참조) 행군하였다. 그 성벽 앞에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배치되어 그곳을 든든하게 지켰으며, 또 거기에는 많은 전쟁 기구와 투석기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어떠한 적군의 병력도 큰 힘으로 부수어 버리시는 지배자께 간청을 올리고 나서 그 성읍을 장악하고, 그 안에 있는 이만 오천 명가량을 쓰러뜨렸다. 유다인들은 다시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육백 스타디온 떨어진 스키토폴리스로 서둘러 이동하였다.

 

그곳은 벳 스안의(1마카 5,52) 그리스 말 이름이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유다인들은 스키토폴리스인들이 자기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불행할 때에도 친절히 대해 주었다고 증언하였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앞으로도 자기 민족에게 잘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그러고 나서 주간절 축제가 가까웠을 때에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기원전 163년의 파스카 축제는 셀레우코스력으로 425일이고, 주간절 축제는(탈출 34,22) 파스카 축제와 일치하거나 그 뒤에 오는 안식일이 지나고 50일이 될 때에 거행되었다. 따라서 마카베오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시기는 기원전 163614일에서 20일 사이가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이라고 하는 축제를 지낸 다음, 그들은 이두매아의 총독 고르기아스를 치려고 서둘러 떠나갔다. 고르기아스는 보병 삼천 명과 기병 사백 명을 거느리고 나왔다. 교전하는 동안에 몇몇 유다인이 쓰러졌다. 바케노르의 군사 가운데 도시테오스라는 이가 있었는데(19절과 24절에 나오는 같은 이름의 장수와는 다른 인물임), 그는 건장한 기병이었다. 그가 고르기아스를 잡고 기병들이 입는 짧은 외투인 그의 겉옷을 힘껏 끌어당겼다. 저주받은 그자를 사로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에 트라케 기병 하나가 도시테오스를 덮치며 그 어깨를 칼로 내리쳤다.

 

트라케는 마케도니아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나라였다. 이곳의 기병대는 그리스계에서 평판이 매우 좋았다. 그사이에 고르기아스는 마레사로 달아났다. 에즈리와 그의 군사들이 오랜 싸움 끝에 몹시 지쳤으므로, 유다는 주님께 자기들의 동맹군이며 전투의 지휘자로 나타나 주십사고 간청하였다. 그러고 나서 조상들의 언어로 찬미가를 부르고 함성을 지르며 고르기아스의 군대를 기습하여 패주시켰다. 전투 때 부르는 찬미가는 쿰란의 에세네 공동체에서 볼 수 있듯이 전례적 성격을 지닌다. 이처럼 유다가 계속하여 승리하였다.

 

그 뒤에 유다는 군대를 모아 아둘람 성으로 갔다. 일곱째 날이 다가오자 그들은 관습대로 몸을 정결하게 하고 그곳에서 안식일을 지냈다. 전쟁을 하면서 사람들을 죽이고 또 전사자들의 주검에 몸이 닿았기 때문에, 이레 동안 부정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렇게 다음 날, 장사 지내는 일이 시급해졌으므로, 유다와 그의 군사들은 전사자들의 주검을 거두어 조상들의 무덤에 친족들과 나란히 묻어 주려고 갔다. 그런데 죽은 자들마다 그 옷 속에서 율법으로 유다인들에게 금지된 얌니아 우상들의 패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전사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사실이 모든 이에게 분명히 드러났다. 아무튼 이런 우상들을 본떠 만든 패들은 불에 태워야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숨겨진 일들을 드러내시는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의 방식을 찬양하였다. 또 그렇게 저질러진 죄를 완전히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며 간청하였다. 고결한 유다는 백성에게, 전사자들의 죄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죄를 멀리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런 다음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물을 바쳐 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죽은 이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산 이들이 바치는 중개 기도와 제사가 효력을 지닌다는 이 사상은 신학의 대단한 발전이라 여겨진다.

 

그 후 기원전 163년 가을인 백사십구년에 유다와 그의 군사들은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가 군대를 거느리고 유다 땅에 쳐들어오는데, 그의 후견인이며 행정을 맡은 리시아스도 함께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10.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카르나임,아타르가티스,에프론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