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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의 고해소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18 조회수984 추천수5 반대(0) 신고

  < 천국의 고해소>

 

"신부님도 고해성사 하세요?"

 

간혹 갓 영세한  교우나 예비신자에게서 받는 질문이다.

 

"그럼요, 저도 사람인데요. 죄 많이 짓고 살아요."

 

그리고 가슴 뒤 편에는 숨겨놓은 말이 있다.

 

"그런데 저도 고해성사는 힘들어요."

 

고해성사를 보려는 이들 틈에 끼여 조용히 감실의 등불을 바라보았다.

 

지난 날의 과오들이 스쳐가고 가슴을 찌르는 후회와 죄책감이 마음을 산란하게 했다.

 

'그래, 오늘 다 말씀드리자.' 고해소 앞, 길었던 줄이 줄어들고 내 차례가 오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수 없이 해 왔던 고해성사임에도, 그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알아낸 죄들을 꽤나 오랫동안 고백했다.

 

그런데도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씻어내지 못한 찌꺼기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

 

"신부님, 이런 많은 죄를 지은 저는 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는 신부입니다."

 

바닥까지 드러나 알몸이 된 순간이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숨고 싶어 고개를 떨군 바로 그 순간, 심판과 질책이 아닌, 하느님의 자비가 내려왔다.   

 

신부님의 따듯한 훈화 말씀이 크나 큰 위로가 되어 울컥 눈물이 났다.

 

내 죄는 크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사죄경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저 편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부님, 제게도 고해성사를 주실 수 있나요?"

 

귀를 의심하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신자석에서 무릎을 꿇은 채, 고해성사를 집전했다.

 

죄인으로 나락에 떨어졌던 나를 하느님께서는 사제로 다시 세워주셨다.

 

참 신비스런 일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작은 고해소는 하느님의 온기로 가득 찬 천국이 되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는 바닥까지 떨어져 스스로 어둠 속에 들어 앉아

어떤 희망도 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내게 일어난 불의에 대항하거나 억울함을 토로하지 못해 마음에 거친 돌부리를 안고 산다.

 

열등감, 소외감, 우울감으로 자포자기 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며 살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벌거벗은 내 모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다. 나약하고 상처 입은 나를 스스로 끌어 안아야 한다.

 

그렇게 고해소 장궤틀 밑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예수님은 다시 일으켜 주셨다.

 

아고보 서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야고 5,16) 

 

내 잘못을 타인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큼 인간의 진실함과 겸손함이 드러나는 때도 없다.

 

지금 이 사회에는 불의와 거짓이 많건만,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이 매일 미사 때마다 읊는 <고백기도>가 더욱 아름답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하면, 우리 가운데로 하느님 신비의 발자국이 새겨질 것이다.   

 

오늘도 사제는 영성체 예식 때 그대에게 말한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김대우 모세 신부 / 

                     

{그래서 오늘은 그토록 신비롭다} 중에서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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