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5 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21 조회수1,444 추천수7 반대(0)

오강남 교수의 세계 종교 둘러보기를 읽었습니다. 종교는 으뜸가는 가르침이고,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교가 있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3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체험이 있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엘리야는 침묵의 소리에서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호메트는 동굴에서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이와 같은 체험은 신비하고, 비이성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와 같은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체험에서 시작됩니다. 체험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의 노력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절대자의 계시로 인해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행동의 변화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갔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을 물리쳤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발하였고,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전하였습니다. 마호메트는 이슬람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행동이 없다면,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세 번째는 교리와 제도입니다. 종교는 교리와 제도를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4가지의 기본 교리를 이야기합니다. ‘천주존재, 강생구속, 삼위일체, 상선벌악입니다. 교회는 7가지 성사를 이야기합니다. ‘세례, 견진, 성체, 병자, 고백, 혼인, 신품성사입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에는 직분에 따라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있습니다. 종교는 개인의 체험, 행동의 변화, 사회의 변화를 추구합니다.

 

오늘 우리는 헤로데의 가슴과 예수님의 가슴을 만납니다. 헤로데의 가슴은 예수님의 가슴을 알 수 없습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가슴에서 멀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취한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욕망의 노예가 된 사람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많은 시련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가슴을 가까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뜻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욕망, 재물, 권력이라는 바벨탑을 쌓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원망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념, 민족, 세대, 지역이라는 갈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도 있지만, 우리의 폭력과 전쟁 때문에 생겨난 난민이 더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물질적인 부와 권력은 지녔지만 미덕이 없었던 헤로데입니다. 그는 화려한 궁궐에 살았지만, 인생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남을 위한 빵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대로 사시는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빵을 많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질서와 세상의 편견을 깨끗하게 부숴버렸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도 골고타의 언덕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행복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이기심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세상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세상은 단 10분을 살았어도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그 삶의 길이로 측정할 수 있겠지만, 인생은 그 삶의 가치로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갈망이 있는 사람과 가슴을 가까이하십니다. 예수님은 힘과 욕망과 재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걸 찾는 사람의 가슴은 예수님의 가슴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곁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지금 굶주린 사람에게서도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지금 헐벗은 사람에게서도 예수님의 향기를 느낍니다. 지금 아픈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슴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은 해야 할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습니다. 헤로데의 가슴은 하고 싶은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느낄 것 같습니다.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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