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23 조회수1,335 추천수7 반대(0)

코로나가 심각하게 번져나갈 때입니다. 병원마다 중환자가 가득했습니다. 사망자들이 늘어났습니다. 미사도 중단되었고, 식당도 문을 닫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피해도 컸지만,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캄캄한 동굴을 불 없이 걸어가는 것 같은 공포였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두려움과 공포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백신이 나왔고, 치료제도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의 강론이 생각납니다. “코로나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감기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두렵다고 운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안전운전하면 자동차는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를 건널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시 누워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거세어졌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놀랐고, 두려웠습니다. 제자들의 소리에 눈을 뜨신 예수님은 풍랑을 잠재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요.’ 제자들에게 이렇게도 당부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더러는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힐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함께 있을 겁니다.’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을 따르세요.’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러분에게 평화를 줍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면, 굳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이렇습니다. ‘기도하면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한 사람은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한 사람은 하느님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논리와 이성을 넘어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단순히 본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헛되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아야 하는지 식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고를 때, 차를 살 때, 집을 살 때 우리는 꼼꼼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 판단을 하면 커다란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하느님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식별입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한번 써보고, 살아봐야 안다.’ 겉보기와는 다른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식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식별의 결과입니다. 결과가 좋고, 결실이 있으면 영적식별을 잘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고, 결실이 없으면 그것은 악의 유혹을 따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위로와 고독이 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결과는 늘 기쁨과 평화입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도 위로와 고독이 있습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 결과는 늘 불평과 불만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영적식별을 잘 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영적식별을 잘 하는 사람은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의 의견도 충분히 듣습니다. 누군가 영적 식별을 잘 했는데, 교만하다면 그것은 악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둘째는 진중함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과 탓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깊은 바다와 같아서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의견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를 때, 교회를 비판하고 순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영적식별이 아닙니다. 비록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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