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27 조회수1,555 추천수10 반대(0)

고려시대 학자인 길재(吉再: 13531419) 이런 시조를 남겼습니다.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원천석도 비슷한 시조를 남겼습니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 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노라.” 두 시조의 공통점은 인생의 무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국가도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비슷한 감정을 그리스와 터키를 순례하면서 느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정성을 기울여서 세웠던 교회는 이제는 돌무더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스탐불에 있던 성 소피아 성당의 성화는 회칠로 덮여 있었습니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성 소피아 성당은 이제 무슬림들의 회당이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욥기도 비슷한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은 헛되고 헛될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사목하던 선배 사제가 시를 한편 보내왔습니다. “상실이 잉태한 것은 다 잃어버릴 수 없어서 남은 것을 헤아려 본다. 일생을 헌신한 하늘 뜻 하나 붙든 삶의 끝에 Natus* Ingressus* Obiit* 세긴 묘비 베고 누운 그대 숫자들 사이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이름자 넘쳐 새 Cemetery로 모여든 사명 마친 이들 수도원은 비워지고 묘지는 넘친다. 슬픔 과해서 은퇴했노라는 파킨슨스 노 사제 간혹 정지된 생각 속에 길 잃어버린 회로 망각 속에는 영혼구령이라는 구호 하나 남았을 것이다. 애썼던 옛 시간에게 묻는다. 그 열정의 열매는 어디에 있는가. 문 닫은 수도원, 비워져 가는 성당, 임종 앞둔 사제들 우리의 수고는 불신의 세대를 낳아 공허한 메아리 차지한 빈 성전을 물려주고 있다. 그래 기쁜 소식은 빈 무덤에서 시작했었지 대답 없는 답변 내일의 그대에게 양도해버린 봉인된 입”(*Natus, *Ingressus, *Obiit 은 태어난 해, 입회한 해, 입적한 해의 라틴어 표기로 수도자들 묘비에 기록된 세 가지이다. 족적 남기신 분들이나 무명의 수도자들 차별 없이 받는 세 가지 숫자이다.) 묘지에 묻힌 형제들은 늘어가고 있는데, 수도원은 비워가고 있음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치 죽비와 같습니다. 무상한 인생이라도,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우리가 마침표를 찍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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