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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0.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09 조회수74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2년 10월 9일 연중 제28주일

복음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어느 단체로부터 강의 청탁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그날 오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 단체 책임자

되시는 분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신부님께 강의를 부탁했는데,

제가 강의하는 시간에만

가능하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게 강의 시간을

바꿔 달라는 부탁이었지요.

하지만 저 역시 그 시간만 가능했기에,

그 신부님이 강의하시고

저는 다음에 강의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곧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신부님 화나셨어요?

그러면 그냥 원래대로 해주세요.”

강의하러 가기 바로 전날

그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제가 아닌, 다른 신부님께서

강의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황해서 그 단체장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의사 전달에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라는 답장이 오더군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강의 준비도 열심히 했고,

강의에 필요한 준비물까지도

모두 사놓은 상태였는데,

이 모든 일들이 헛일이 된 것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힘이 들어갔는지,

안경 닦다가 안경테가

부러지기까지 했습니다.

또 문턱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실수 연발입니다.

안 좋은 생각을 하니,

안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좋은 것도 많습니다.

강의하지 않아도 되니,

먼 곳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말 교통 체증에 시달릴 일도 없습니다.

또 할 일이 많았는데 여유 있게

주말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강의하지 못하게 된 것,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이르시지요.

나병 환자 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해서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병 환자는 율법에 따르면

성으로 둘러싸인 큰 도시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예루살렘 성전에는

얼씬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어서

예수님을 보고서도 멀찍이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나병이라는

병으로부터 깨끗해진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께 감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나머지 아홉은 왜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았을까요?

하느님의 영광이 이루어졌음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깨끗해진 것만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자기를 고쳐 주신 예수님을

만나서 다시 부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만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순간에서도 감사의

이유를 찾으며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사랑하듯이,

용서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용서한다.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용서받은 기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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