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 연중 제28주간 월요일...독서, 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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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0-09 | 조회수82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주해 22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사악과 이집트 출신 종인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을 지칭한다. 아브라함이 크루라에게서 낳은 자식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씌어 있다”는 성서 본문을 인용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서의 특정한 본문이 인용된 것이 아니라 창세기의 몇 장에 걸친 아브라함에 관한 내용을 요약한다. 따라서 이는 바오로가 적대자들의 주장을 논박한다는 암시가 된다. 그 둘째 암시는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 그리고 사라와 그의 아들 이사악을 대조시키면서도 여기서는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뒤에 가서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사라와 이스마엘의 이름은 뒷부분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유다주의자들이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즉 사라의 아들 이사악에게 약속이 주어졌으며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이사악의 후손에게 주어진 모세의 율법에 종속되지 않으면 그 약속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인 듯하다. 23절 하느님의 의지와 약속을 모르는 육적 생활이라는 윤리적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 출생의 자연적 성격, 즉 후손을 얻으려는 아브라함의 소망을 가리킨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일반적 약속이 아니라, 창세 15.4; 17,16-21에 나오는 특별한 약속을 가리킨다. 그 약속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사악이 탄생함으로써 성취되었다. 24절 창세기의 사화는 좀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비유” 혹은 “우의”는 옛 성서 전통을 취급함에 있어 자구적인 뜻을 무시하고 새롭고 숨은 의미를 찾아내어 상징어로 표현한 랍비들의 해석방법을 지칭한다. “두 계약”은 당연히 토라중심적인 “옛 계약”과 그리스도중심적인 “새 계약”을 의미한다. 우의적 해석에 따라 하갈을 시나이 계약, 시나이 산, 현 예루살렘과 동일시한다. 유다인들과 유대주의자들은 시나이 계약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바오로에게 그것은 종살이 운명을 지고 태어난 하갈의 자손처럼 “육ㅡㄷ을 따라” 태어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종살이시키는 것이다. 26절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직역하면 “위의 예루살렘”, “현재의 예루살렘”에 대조되는 표현이다. 천상 예루살렘. 아니니까 성취된 세말 세계를 가리키며, 현 예루살렘처럼 현존하는 실재이기도 하다. 하갈이 상징하는 현 예루살렘이 그 자녀들과 종살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라를 암시하는 천상 예루살렘은 그 자녀들, 즉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사라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사라를 완성된 구원의 세계를 나타내는 천상 예루살렘의 원형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7절 이사(LXX)54.1이 인용된다. 예언자는 황폐한 시온을 향해 유배에서 귀향하는 기쁨을 말한다. 바오로는 이사야의 말을 유비적으로 사라와 하늘의 예루살렘에 적용한다. 바오로는 천상 예루살렘을 “외로운 여인”,“산고를 모르는 여인”과 동일시하면서 이사야의 예언이 교회의 성장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스도 안에 모이는 신자가 많아진다는 의미로 “외로운 여인의 자손들이 많다”라는 예언을 해석한다. 31절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운 여자의 자녀로서 그리스도께서 성취해 주신 자유를 누린다(5.1). 5장1절 5장은 앞부분과 연결하는 문장이나 접속사 없이 갑자기 시작된다. 다만 “자유”라는 말을 4.31의 “자유인”이라는 말에 착안하여 선택한 듯하다. “자유를 위해”라는 말을 문장의 맨 앞에 놓아 강조함으로써 편지의 교의적 메시지를 요약한다. 즉, 자유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원사업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자유는 율법의 종살이로부터의 자유요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자유다. “굳건히 서라”는 것은 종살이의 멍에로 이끌려가는 모든 노력에 대항하여 단호하고 확고하게 자유 안에 버티라는 호소다. “멍에”는 율법주의적 규정들을 지칭한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주해 표징 요구 11,29-32역시 어록에서 옮긴 것인데, 루카가 더 충실하게 옮겨썼다. 요나의 표징에 관한 단절어와 예수의 전권의식에 관한 단절어는 본디 따로 전해왔는데, 어록의 전승자나 작가가 한곳에 모았다. 29절 “요나의 표징” 단절어의 변체가 마르 8,10-13에 수록되어 있는데, 거기서는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의 표징요구를 단호히 물리치신다. 그러나 여기 어록에서는 요나의 표징 한 가지만은 주시겠노라고 하신다. 구체적으로 무슨 표징을 주시겠다는 것인가? 그 옛날 요나가 기적적으로 구제받아 니네베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처럼, 예수님도 기적적으로 부활하여 하늘에 계시다가 곧 당대 유다인들에게 종말 인자로 나타나는 표징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발설이 아니라 예수 인자의 재림을 학수고대한 어록작가 교회의 예수재림 신앙을 반영한다. 31절 남방의 여왕이나 니네베 시민들은 다같이 이방인들이다. 이들이 현자 솔로몬의 지혜와 예언자 요나의 선포를 경청했는데 반해서 예수시대 유다인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탁월한 현자요 예언자이신 예수님의 지혜와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대 유다인들을 상대로 엄한 심판을 예고하셨다. 예수께서 솔로몬이나 요나보다 더한 분으로 자처하신 말씀에는 그분의 전권의식이 분명히 드러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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