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최해성 요한 복자의 길을 도보순례를 하며 느낀 단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16 조회수554 추천수2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마산교구 신자로서 원주교구 주관으로 하는 최해성 복자 요한길 걷기 순례 행사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희망의 순례도 완주하였습니다. 먼저 이런 행사를 하게 해 주신 원주교구 관계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천주교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유섬이 유배길과 대구교구 한티성지에 박해받던 교우들이 걸었던 한티가는 길도 도보순례를 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 순교자 압송로 및 다양한 순례에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9월 24일 하는 단체 순례를 참가하고는 싶었지만 전주교구에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참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 뜻 깊은 행사라 혼자서라도 걷고 싶어 걷게 되었습니다. 혼자하다 보니 길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른 경험에 비추어서 보면 사실 시간과 거리를 봐서는 하루 만에 다 완주하려고 계획했지만 제가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물론 시간적으로는 더 소요됐지만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최해성 복자의 삶을 묵상하면서 덤으로 희망의 순례길을 걸으며 한 묵상이 더해져 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동시에 묵상할 수 있는 뜻 깊은 순례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산길에서 길을 찾을 수 없어서 헤맨 시간에 토마스 신부님의 삶을 절절히 묵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기본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상황에서도 길을 찾는 게 힘들었는데 신부님 같은 경우는 저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상황에서 복음을 위해 모든 걸 감수하시면서 하느님 일을 하신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번 도보순례를 하면서 한 묵상이지만 다시 한 번 더 순교와 배교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해봤습니다. 복자께서 강원 감영으로 가시면서 그냥 목숨에 두려움을 느껴 배교한다고 말하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실존 여부가 불확실하면 생명에 대한 생존욕구가 먼저라서 충분히 배교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항구한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지에 대해 묵상을 해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핍박이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신앙심을 가질 수 있었는데 오늘날 같은 경우는 핍박은 고사하고 오히려 얼마든지 마음만 있으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신앙인으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순례를 하면서 기회가 되면 나머지 다른 순례길을 다 완주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때는 또 어떤 걸 묵상하게 될지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이런 행사를 열어주신 원주교구에 감사를 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