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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 연중 제29주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20 조회수280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일치권고

3-6장은 서간의 제1주제로서 권고 부분이다.

 

1

이 편지의 권고는 일치의 호소로 시작하는데, 이는 교회를 위협하는 불일치와 이단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 시작하는 권면들은 앞의 1-3장에서 상론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건에 근거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권고합니다
로 번역된 파라칼레인은 바오로 서간들에서 공동체에 대한 권고의 특수용어처럼 되었는데,“권고하다의미에도 간청하다또는 위로하다의 의미가 있다.

 

2

골로 3,12-13; 갈라 5.22-22; 필립 2.3에도 나오는 덕목들 참조. 겸손과 온유와 인내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덕목이다. 이 모든 덕목의 바탕은 사랑이다. 사랑의 결핍이야말로 공동체의 일치를 해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겸손은 대표적인 성서적 덕목이다.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겸손이란 노예나 하는 비굴한 태도로서 추구할 만한 덕목이 아니었다. ”온유에 관해서는 마태 11.29; 2고린 14.1;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에 관해서는 1고린 13.3 참조.

 

3

2.14에 따르면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시다. 골로 3.14에 의하면 사랑은 완덕의 끈이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평화는 교회 안에서 일치로 나타난다.

 

유지하도록 힘쓰시오로 보아, 공동체의 일치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 안의 일치는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이 선물의 보존을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4

4-6절의 짧은 글 안에 하나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 나오면서 교회의 일치를 강조한다. 이 구절은 신약성서에서 교회일치에 관한 가장 명맥하고 강한 호소다. 4절의 한 몸- 한 영- 한 희망이라는 3중개념이 5절의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라는 3중개념에 상응한다. 4-6절 문장 리듬의 정점은 6절이다. 일곱 차례의 하나중 맨 마지막으로 한 분 하느님이 언급되는 짧은 문장에 네 번이나 모든이 사용됨으로써 6절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4-6절 첫머리의 몸도 하나라는 표현에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교회의 일치란 오직 그리스도를 근거로 할때만 의미 있고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

 

희망으로가 아니라 희망 안에서. 부르심과 함께 하나인 희망이 주어졌다.

 

5

주님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라는 중개념은 원문에서 하나를 뜻하는 낱말이 남성- 여성-중성으로 변화하면서 표현되어 독특한 느낌을 준다. “주님도 한 분이라는 고백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네가 믿는 주님들과 구별하는 데 사용한 일종의 표어였던 것 같다.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라고 믿음과 세례가 직결되어 있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도계에서 믿음과 세례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세례 때 지망자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신앙고백을 하는데, 5절에서 말하는 믿음은 그런 신앙고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하나인 믿음은 세례에서 신앙고백으로 표현되고 성령의 날인을 받으며 신앙인들을 새로운 일치로 묶어준다.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는 신앙인들을 한 분이시 주님 아래 두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구원을 준다.

 

6

한 분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신약성서 서간들에 일관하여 나온다. 이런 신앙고백은 다신교 환경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그리스어 디아는 수단적 의미로 통하여보다는 관통하여의 듯을 더 갖고 있다.

 

6절에 네 번 아노는 모든 이의 그리스어는 문법상 남성복수로도 중성복수로도 이해될 수 있으므로 해석을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의 일치를 권고하는 문맥에서 보면 일차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지만, “하나이신 하느님이라는 주제가 구약성서 배경에서 전통적으로 창조주를 연상시킨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만물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도 배제할 수는 없다. “모든 이(만물) 위에, 모든 이(만물)을 통하여 모든 이(만물)안에계시고 활동하시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이야말로 교회 일치의 궁극적 근거다.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54-59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이 시대의 중요성을 간파하라

12,43-56의 단절어는 루카가 어록에서 옮겨쓴 것인지 또는 고유 전승에서 수집한 것인지 밝히기 곤란하다. 마태 16,2-3에 있는 변체는 바티칸, 시나이 등 중요한 사본에 없는 것으로 미루어 후대 어느 필사자가 마태오복음에 삽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단절어의 뜻인즉, 당대의 사람들이 일기는 예축하면서 시대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시대야말로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이전의 마지막 때임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예수님의 언행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하기 시작했음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늦기 전에 화해하라

`2,58-59의 상징어는 어록을 옮겨쓴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자연스럽고 간결하다. 빚을 진 일이 있거든 판사에게 압송되어 금고형을 받기 전에 서둘러 채권자와 화해하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뜻인즉, 하느님의 심판이 박두했으니 서둘러 화해하라는 것이다.

 

57

57절은 루카가 54-56절과 58-59절을 연결하면서 덧붙인 가필일 것이다.

 

59

렙톤대신 병행문 마태 5,26에서는 과드란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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