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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 연중 제30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26 조회수354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6,10-20
형제 여러분,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19 그리고 내가 입을 열면 말씀이 주어져 복음의 신비를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간구해 주십시오.
20 이 복음을 전하는 사절인 내가 비록 사슬에 매여 있어도,
말을 해야 할 때에 이 복음에 힘입어 담대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영적 투쟁을 하라

에페소서의 마지막 권고인 6.10-20에서는 독자들에게 아직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위험들을 깨우쳐 준다. 전쟁 용어들을 사용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서 굳세어질 것을 호소한다.

 

10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함”, 하느님이 당신 원수들을 대적하기 위해 무장하신다는 구약성서 표상을 인용하여 여기서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라고 권고한다.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음을 말하는 것 같은 2.5.8(“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다”)1.23(권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6,10-13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완성된 구원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전재한다. 악마와 그 종속된 권세들은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악의 세력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무기들을 갖고 있다.

 

12

일부 사본에는 여러분의”.

피와 살”: 성서적 표현으로 대부분 반대 순서로 살과 피라고 되어 있는데 악함과 덧없음이라는 관점에서 본 인간을 뜻한다. 여기 12절에서도 초지상적 권세들에 맞서기에는 약한 인간을 표현한다.

 

1.21 참조.

 

악한 영들은 고대 근동 사람들의 표한에 의하면 천체들과 그들을 통해 우주를 지배한 영적 존재들을 뜻한다. 그들은 지상과 하느님의 처소 사이인 하늘또는 공중에 사는데, 부분적으로는 바오로가 갈라 4.3에서 말하는 세상의 원소와 같은 뜻이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인간들을 죄중에서

억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셨고,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분의 힘으로 무장하여 악한 영들을 거슬러 싸울 수 있게 되었다.

 

14

이사 11.5.

이사 59.17; 지혜 5,17-21 참조.

 

15

이사 52.7; 나훔 2.1 참조.

 

17

구원의 투구는 이사 59.17 인용. 1데살 5.8에서는 희망이라는 중요한 단어를 첨가하여 구원에 대한 희마을 투구로 씁시다라 한다. “구원의 투구를 받으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정해진 구원에 대한 굳은 희망을 가지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느님의 말씀을 칼에 비유하는 것은 예언자들에게까지 소급된다. 이사 49.2에 의하면 야훼의 종은 야훼께서 당신 입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호세 6.5에는 야훼께서 당신을 망각한 사람들을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써 죽인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구약성서 전승은 신약성서에도 계속된다. 여기 문맥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복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투쟁을 위한 무장은 완벽해진다. 진리, 정의, 평화, 믿음,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기도는 하느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영적 무기들이다.

 

19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일부 사본에는 복음의가 없다.

입을 열 때에 말씀이 내게 주어지도록”: 마태 5.2를 연상시킨다.

 

20

3.1; 4.1 참조.

사절이 되다또는 사절 역할을 하다로 번역되는 프레스베위오 동사가 2고린 5.20에도 나오는데, 거기서 바오로는 화해를 이루는 일에 있어 그리스도의 사절로 자처한다.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여우 같은 헤로데

13,31-33은 루카에만 수록된 상황어다.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헤로데 안티파스는 기원전 4년부터 후 39년까지 갈릴래아와 베레아 지방 영주로 행세한 사람인데, 이자는 자기 영지의 안정을 바란 나머지 전에 요한 세례자를 참수한 바 있다. 똑같은 동기로 이제 예수님을 몰아내려고 바리사이를 시켜 협박했을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32절과 같이 답변하셨을 것이다. 루카는 예수님 답변을 나름대로 풀이하여 33절을 만들어 덧붙였을 것이다.

 

32

여우는 간교한 동물이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정정당당하게 후방령을 내리지 못하고 간사하게 협박하는 것을 뜻하는 지칭이겠다. 또한 여우는 힘센 사자와는 달리 하찮은 동물이다. 헤로데 안티파스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뜻으로 그를 여우라 하셨을 수도 있다.

 

오늘과 내일은 우리말의 하루 이틀처럼 짧은 기간을 뜻한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제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예수께서는 장시 동안 구마와 치유 활동을 계속하시겠다는 소신을 피력하신다. 일단 그 일들을 끝내는날에는 당신 자신이 끝장날각오가 되어 있다 하신다. 이는 죽음을 예감하고 예고하시는 말씀이다.

 

33

33절은 루카가 32절의 말씀을 풀이한 가필일 것이다. 사실 33절에는 루카의 편집과 사상이 집적되어 있다. 루카는 예수님 상경기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루카는 유다인들이 구약의 예언자들을 박해한 사실으 매우 강조한다. 또한 루카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서보다 더 자주 예수님은 예언자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루카는 예수의 죽음을 예언자의 죽음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루카는 예수님이 구원을 이룩하시는 곳은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한다. 루카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수난, 부활, 발현, 승천이 일어난 곳일뿐더러,또한 성령이 내려서 교회가 창립된 곳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심판 예고

13,34-35는 분명히 어록을 옮겨쓴 것이다. 어록에서는 13,34-3511,49-51과 직결되었으리라. 두 가지 말씀의 양식과 내용이 같을 뿐 아니라, 마태오복음에는 한자리에 나오기 때문이다.

루카는 예수께서 34-35절을 발설하셨다 한다. 그러나 어록의 전승나나 작가는 그러므로 하느님의 지혜는 말했던 것이다라 하여 하느님의 지혜의 발설이라고 했으리라.

어록의 전승자나 작가는 한편으로 신명기 계통 문헌의 영향을 받고 또 한편으로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아 지혜의 말씀을 만들었을 것이다. 신명기 계통 문헌에서는 도식적으로, 하느님이 예언자들을 파견한다 그러나 그들은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한다- 그러니 박해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어록의 전승자나 작가는 이런 사상을 수용하여, 유다인들이 세례자와 예수와 사도들을 박해한 사실을 풀이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지혜문학에서 지혜를 의인화했듯이 하느님의 지혜가 말씀하셨다는 식으로 표현했건 것이다. 그리하여 어록의 전승자작가는 세례자와 예수와 사도들을 지혜의 심부름꾼으로 여겼다.

 

어록이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다음 대목들에 분명히 드러난다.7.35; 10.21; 11,49-51; 13,34-35 또한 마태 11,28-30도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 단락 역시 어록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이 크다.

 

34

원문의 아페스탈메노이는 막연하게 심부름 온 사람들이라 번역할 수도 있고, 분명하게 예수사건을 전하는 사도들이라 번역할 수도 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감싸주시는 것을 이런 식으로 말한 사례가 신명 32,11; 이사 3`.5; 시편 36.8에 있다.

 

35

너희 집은 예루살렘 성전 또는 도성을 가리킬 것이다. 어록작가의 사상을 풀이한다면, 하느님은 구약의 예언자들도 신약의 사도들도 죽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벌을 내려 성전과 도성을 떠나신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자주 하느님의 징벌을 이런 식으로 예고한 바 있다.

 

시편 118,26 인용문인데 거기서는 오시는 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받으소서라 했다. 순례축제를 맞이하여 성전에 오는 순례자에게 제관에 하느님의 축복을 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 35절에서는 어순을 바꾸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받으소서라 한다. 이는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고 재림하실 예수님을 환호하는 환성을 뜻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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