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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30 조회수380 추천수3 반대(0) 신고

221030 연중 제 31주일.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루카 19,5)
 

오늘은 연중 31주 주일입니다. 가을이 깊어 갑니다. 회한과 감사로움으로 가을의 가슴이 물들어 갑니다. 지는 낙엽이 대수롭지만은 않습니다. 뒹구는 낙엽이 발길에 와 닿으면, 달려온 시간을 절로 뒤돌아보게 됩니다. 자비가 익어가고 회개의 얼굴이 붉어집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자비와 회개를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그것은 회개가 낳은 자비가 아니라, 자비가 낳은 회개입니다. 곧 자비가 익어, 회개가 터져나는 신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그 사람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주십니다.”(지혜 11,23)
 
그렇습니다. 회개하였기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도록 먼저 자비가 베풀어졌습니다. 자비를 먹고서야 진정한 회개가 터져 나오는 까닭입니다.
 
<화답송>에서 시편작가는 노래합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에 넘치시네.”(시 145,8)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리시면서, 당신 자신에 대해 계시하신 내용입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복음>의 자캐오는 그렇게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비록 죄인이었지만, 회개하기도 전에, 먼저 주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회개하였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를 입고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캐오는 그분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이 가로막은 까닭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키가 작아서인 까닭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군중을 파헤치고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죄인인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죄인인 채 그분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 못내 송구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군중을 앞질러가서 길 앞에 있기만 하여도 오시는 그분을 볼 수 있으련만, 굳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숨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질러 달려온 이는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렇게 숨은 자캐오를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시던 그 사랑으로, 숨어 있는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가려져 있어도 훤히 보시고, 어찌 아셨는지 놀랍게도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기겁할 노릇입니다.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시듯, 아무도 몰래 나무 위로 피해 숨어 있는 자캐오를 부르십니다. 어찌 아셨는지,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루카 19,5)
 
자캐오는 그분을 몰랐지만, 그분은 그를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숨어 있어도 아시고, 키가 작아도 아시고, 훤히 꿰뚫어 아셨습니다. 그의 모든 행실을 다 아시고, 따돌림 당하고 배척받는 죄인의 아픔도 아시고, 죄인인 채로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그 가련함도 훤히 아셨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훤히 아시는 그분의 아심 앞에 부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내려올 수가 없나 봅니다. 그분의 그윽한 사랑 앞에 승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내려와 지지 않나 봅니다.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시는 분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서는, 주님이 나보다 낮은 곳에 계심을 보지 못하고서는 결코 내려와 엎드려지지가 않나 봅니다. 당신의 자비를 입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허물이 보이는 까닭입니다. 주님께서는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해 입히신 그 사랑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당신께서는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피해가는 자캐오의 집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십니다. 당신이 품으신 그 사랑은 그토록 가득하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바로 그 사랑에 기대지 않고서는, 우리가 있을 곳이 없음을 봅니다. 당신이 바로 우리의 거처, 우리의 집인 까닭입니다. 참으로 당신께서는 잃은 이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이신 까닭입니다. 비로소 자캐오는 주님을 뵙고야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게 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의 사랑에 의탁하여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저도 오늘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오늘 주님께 무엇을 드리겠는지요? ~~~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루카 19,5)

주님!
당신은 저를 훤히 아십니다.
교만과 탐욕의 나무 위에 올라 허영과 가식으로 몸을 가리고
죄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를 훤히 아십니다.
그릇된 저의 모든 행실을 아시고, 손가락질 당하고 배척받는 아픔도 아시고
죄인인 채로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이 가련함도 훤히 아십니다.
바득바득 기어 올라간 교만과 허영에서
얼른 내려와 당신 발아래 엎드리게 하소서.

당신 사랑 앞에 부복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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