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30 조회수996 추천수7 반대(0)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뉴욕의 단풍도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내 마음이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불안하면, 내 마음이 고통스러우면 단풍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조화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있고, 아름다운 호수와 계속이 있고, 한적한 산책로가 있는 곳의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빌딩 숲 한 가운데 있는 단풍은 외롭기 마련입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멀리서 보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단풍도 색이 바란 것도 있고, 벌레 먹은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도, 아름다운 산에 있어도 단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느님 은총의 빛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우리의 모든 삶은 하느님 은총의 빛 속에 있어야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선악과와 십자가의 이야기를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할까요?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알았고 하느님과 같아질 것 같았지만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인류 역사에 드러나는 폭력, 전쟁, 살인, 갈등과 분열은 선악과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 선악과를 자신의 입장에서 드러냈기에 그와 같은 고통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가 선악과를 몰라서 예수님께 비난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자신들의 기준에서 받아들였고, 선악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을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이 지켜보는 국정감사의 현장에서 낯부끄럽게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는 것은 선악과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추어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당의 공동체가 서로 갈라져서 다투는 것도 선악과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 선악과를 자신들의 입장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장의 슬픈 독백입니다. “저는 가족을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몸도 안 돌보고 열심히 일 했습니다. 그러난 어느 날, 제 아이들이 제게 와서 이렇게 대들면서 말하였습니다. ‘아빠! 아빠가 우리를 위해서 해 준 것이 뭐가 있어요? 덩달아 제 아내도 제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욱하는 성격에 한바탕 싸움하고 이혼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제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해 준 말이라고는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 공부나 잘해!’ 그리고 제 아내에게 해 준 말은 밥 줘! 나 피곤해! 당신이 알아서 해!’ 이 세 가지 말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가정에 선악과는 있었지만 십자가는 없었습니다.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 십자가를 다르게 해석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백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해 주고 여관까지 데리고 갔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십자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진 재물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진 것이 있다면 4배고 갚겠다고 했던 자캐오는 십자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본인도 걸인이면서 더 어려운 걸인들에게 밥을 나누어 준 최귀동 할아버지는 십자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꽃동네로 열매 맺었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당연히 상대도 같은 생각하고 있을 것(선악과)이라는 착각이 바로 가정을 깨어 놓았습니다. 내가 상대가 되어주는 것(십자가)이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이 말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