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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08 조회수37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전례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이다. 오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 각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라테라노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지낸다.

 

 

 

1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9-11.16-17
형제 여러분, 9 여러분은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10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저마다 잘 살펴야 합니다.
11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0

내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 5: 12.3: 15.10“로마 12.3; 1515; 갈라 2.9; 에페 3.7 등을 함께 보면 하느님의 교회를 박멸하려고까지 했던 바오로 자신이 복음선포자로 하느님으로부터 부름받았다는 것을 얼마나 은혜로운 일로 생각하는지가 역력히 보인다.

 

11

1,2-24‘2.2 참조. 에페 2,19-21에 따르면 신앙 공동체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기초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모퉁잇돌이 되어 세워진 성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에페 2.20이 여기 11절과 모순된다고 볼 수는 없다., 에페 2.20에서는 그리스도를 공동체의 기초라고 하는 대신에 모퉁잇돌이라고 함으로써 공동체에 대해 그리스도의 핵심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비해 에페 2.20에서는 복음선포자들,특히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변조시키는 선포행위에 대하여, 특히 복음선포자들에 대한 오해 때문에 오히려 복음 자체를 변조시키는 결과가 오는 것을 경고한다.

 

16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요,... 성전을 파괴하면...”이라는 문장에서 여러분이라는 말로 바오로는 공동체의 구성원 각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고린토 공동체가 세상의 지혜를 앞세우고 파당을 이루며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맥락을 감안할 때 더욱더 그렇다. 12,12-21에서 바오로는 신앙 공동체를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표현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다. 여기 16절에서와는 달리 6,19에서

 

바오로는 음행을 피하라는 권고를 하면서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의 성전이다라고 한다. 쿰란 공동체에서도 자신들의 공동체를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칭하곤 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만남의 장막안에 또는 시온 산 위의 성전 지성소에 현존하면서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다고 믿었다.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성전 정화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에도 보도된다. 그러나 공관복음은 예수의 공생활 말기에, 요한복음은 초기에 성전 정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도한다. 연대기적으로 어느 보도가 역사적 신빙성이 더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쉽지가 않다. 사실상 네 복음 모두 정화가 역사적 사실인 것만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저자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보도하고자 하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텍스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성전 정화를 가나 기적처럼 예수의 자기계시로 설명하면서 예수를 믿는 제자들과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대조한다. 특히 유다인들이 예수에게 표징을 요구함으로써 예수에 대한 그들의 몰이해와 불신이 폭로된다. 이렇게 예수의 공생활 초기부터 적수들이 등장함으로써 예수의 은명을 예감케 한다.

 

13

요한복음은 예수가 공생활 동안 세 번 해방절을 보낸 것으로 보도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3년 가까이 공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다인들의 해방절이란 표현은 유다인들의 율법처럼 유다인들과의 거리감을 시사한다. 여기서 유다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적수로 등장한다.

 

예루살렘 도시가 해발 760미터쯤이고 갈릴래아 호수가 해저 200미터쯤이므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갈 때는 으레 이런 표현이 쓰인다. 아마도 예수는 해방절을 맞이하여 순례차 예루살렘으로 간 듯한다.

 

14

성전 마당 가운데서도 외부에 속한 구역인 이른바 이방인 마당에서는 여러 장사꾼과 환전상이 특히 축제일을 앞두고 대성황을 이루었다. 순례자들이 성전에 바칠 제물과 성전세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전세는 고대 시리아 화폐로만 지불해야 했는데, 시중에서는 로마제국 화폐만 사용했으므로 성전에서는 환전상이 필요했다. 원문에는 성전”(마당)으로만 언급되어 언급되어 있다. , 성전 마당과 주랑을 포함한 전구역을 뜻한다. 따라서 성전 어느 구역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5

예수는 장사꾼과 환전상들만을 상대로 성전 정화를 펼친 것으로 보도된다.

 

16

성전 정화를 하고자 한 예수의 의도가 표현된 말이다. 특히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표현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전 정화를 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성전 정화를 예수의 메시아적 행위로도 이해할 수 있다.

 

17

제자들은 예수의 성전정화사건을 시편 69.10의 내용에 비추어서 이해했다는 저자의 설명이다. , 제자들은 하느님의 집에 대한 예수의 열정이 위험한 결과, 곧 죽음을 초래할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18

유다인들은 제자들과 달리 예수가 성전에서 행한 일에 대해 일종의 심문 형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 자기네들의 인정할 만한 표징을 요구한다. 표징은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신적 증거를 뜻한다. 한마디로 믿지 않는 자들이 요구하는 표징이다. 또한 이들의 표징 요구는 유다 지도자들이 제기한 예수의 권위에 대한 물음과도 흡사하다. 따라서 여기서 유다인들이란 믿지 않는 자들을 특징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19

예수는 유다인들이 요구한 표징과 전혀 다른 표징을 제시한다. 그러나 예수의 이 대답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한 계시 말씀이다. 20절에서 유다인들의 오해가 언급되고, 21절에서 저자의 설명이 따른다. 여기서 성전은 지성소가 딸린 성전 건물을 가리킨다. 14절에서 언급된 성전과는 다르다.

 

20

유다인들은 예수의 계시 말씀 가운데 언급된 이 성전을 당시 세워져 있던 성전 건물로 이해하고자 예수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20/19년 경부터 성전 신축공사를 시작했으니, “46뒤라면 27/28년경 곧 예수의 공생활 성전정화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1

예수는 자기 몸이 곧 성전임을 가리켜 말했다고 저자는 설명함으로써 유다인들의 오해도 지적한다. 저자의 이 설명으로 인해 특히 예수의 계시 말씀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예수는 자신의 몸을 허물도록자유롭게 내주지만,“사흘 안에 다시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자신에게 부여된 죽고 부활한 자유나 권능도 아울러 시사된다,

 

예수의 성전곧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므로 영과 진리 안에서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예수와 함께 예수 안에서 시작된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영과 진리 안에서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중심이요, 하느님의 현존의 장소이며, 생명수가 넘쳐흐르는 영적 성전이다.

 

22

제자들은 예수 부활 후 성령을 받고서야 비로서 예수의 계시 말씀을 상기하고 성경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이다. 여기서 성경은 예수가 죽고 부활한다는 말씀인 17절에 인용된 구절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 성전 정화와 성전에 관한 말씀이 예수의 영광을 들어내는 계시로 설명된다.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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