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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1.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13 조회수44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2년 11월 13일 연중 제33주일

복음 루카 21,5-19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사전에서 어른을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다 자랐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다는 것으로,

그렇다면 만 19세가 넘으면 어른일까요?

여기에 자기 일에 대한 책임까지

질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 외형적으로는 어른인데,

하는 모습은 철부지 애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른이 훨씬 넘었음에도

어머니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할 것을 힘들겠다고

부모가 대신해 줬기 때문입니다.

정신 분석가 제임스 홀리스는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다음

세 가지를 경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고통을 겪는 일.

2) 자신의 의지보다

더 큰 힘이 있음을 깨닫는 일.

3)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

이를 경험하지 못하면 자기중심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을 무조건 피하고

볼 것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더 큰 힘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믿어야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과연 어른답게 살고 있나요?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종말론적 훈계를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인들의

민족적인 자부심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이

모두 허물어진다는 것이지요.

성전의 멸망은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조국의 멸망을 뜻합니다.

이를 알고 있었던 제자들은 두려워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종말은

성전의 파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바로 정신적인 혼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큰 혼란에 빠집니다.

또 이와 같은 혼란 뒤,

민족적인 혼란으로 전쟁과

반란이 온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큰 지진이 발생하고 기근과

전염병이 생긴다고 하십니다.

고통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정신 차려야 한다면서

“무서워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박해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계기가 됩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려면 산고를

겪어야 하는 이치처럼,

제자들의 박해는 새 나라인

하느님 나라가 태어나는

고통의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라는

말씀을 새기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인내로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으로 성장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매일 사랑하는 일을 한다(김지연)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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