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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 연중 제33주간 수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15 조회수335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4,1-11
나 요한이 1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7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8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9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

묵시록의 모든 새로운 계시가 그 다음에라는 말로 시작된다. 구약 예언문학과 외경 묵시록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법으로, 환시자가 계시를 받는 특별한 탈혼상태를 나타낸다.

 

묵시문학에 흔한 표현법.

 

새로운 현시를 보여주기 위한 초대의 말. 실제로 제자가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다만 문이 열리고, 새로운 계시에 초대되어 계속 바라보는 상태다. 나중에 보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금대접을 가지고 내려오며, 저자는 지구상에서 천상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초대 말씀인 올라오너라는 출애 19.24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은 시나이 산에 나타나 모세를 통해 선택된 사람만 올라올 수 있다고 하신다. “올라오라고 초대받은 사람만이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을 알 수 있다.

 

2

옥좌는 4장의 중심이다. 주권자의 자리요, 따라서 거기 앉아 계신 분을 장엄하게 묘사한다. 옥좌와 옥좌에 앉으신 분이란 표현은 구세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힘을 나타낸다. 피조물에 대한 완전한 지배와 당신 위엄의 영광 속에 소개되는 하느님의 현존이 구약성서의 전통적 예언 방식, 특히 이사 6,에제 1, 다니 7장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다른 요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전례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서와 후기 유다문학에서는 자주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옥좌에 대해 언급한다.

 

묵시록은 하느님을 여기서도 다른 데서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옥좌에 앉으신 분이라고 호칭한다. 그분 얼굴 모습도 빛나다등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3

장엄하게 옥좌에 앉아 계신 분을 묘사하지만 어떤 분인지 뚜렷이 지적하지는 않는다. 구약의 표현과도 조금 다르다. 다니 7.9에서 옷은 눈같이 희고,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하고, 에제 1.26에는 높이 옥좌와 같은 것 위에는 사람 같은 모습이 보였다한 것과 달리, 묵시록에서는 다만 장엄하게만 나타낸다.

 

4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쓴 원로 24명이 어떤 사람들인지 확실하지 않다. 천사들을 상징한다는 학자들도 있고, 선택받은 사람들, 지상에서 고생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쓴 위대한 사람들을 상징한다는 학자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4장에서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우선 하느님과 어린양에게 찬미를 드린다. 그리고 둘째로는 저자에게 하느님이 계시하신 내용을 설명해 준다. 또는 몇 명은 향을 담은 금대접을 들고 나타난다. 묵시록에서 향은 성도들 희생의 기도를 가리킨다.

 

5

하느님이 세상에 당신 모습을 나타내실 때 따르는 표지다. 시나이 산에서의 신현을 상기시킨다.

 

예루살렘 성전의 7지 촛대를 상기시킨다.

 

일곱 등경“천하를 살피는 야훼의 눈으로 보는 즈가 4.10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일곱 별은 유다 전승에서 말하는 일곱 천사라기보다 하느님의 영을 총칭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

마지막 시기에 새 세상이 새창조되었을 때 바다가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에 대해 묵시록은 바다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새 세상에는 바다가 없다. 바다는 검푸르고 밑이 보이지 않아 악의 세력이 숨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12-13장에서 어린양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12-13장에서 어린양의 원수로서 나타나는 다른 짐승들도 바다에서 올라온다. 모든 악의 세력이 사라진 새 세상이 없을 때는 바다로 나타난다. 에녹 23.3에서는 나에게 지상에 있는 것보다 더 큰 바다가 보였습니다라고 말한다. 레위 유언 2.7에서 바다는 첫째와 둘째 하늘 사이에 있다. 성서에서는 천궁 위에 있는 윗물과 땅에 있는 바다인 아랫물을 언급한다. “수정 바다는 결국 윗물에 같다고 볼 수 있다.

 

8

이사 6,2-3에 있는 세라핌의 노래 첫마디 인용문, 끊임없이 이어지는 네 생물의 찬송에 신성의 중요한 요소가 열거된다. 성성과 권능과 영원성.

 

10

원로들의 장엄한 경배와 찬미노래는 다니 2-37장에 묘사된 장엄한 전례를 반향한다.

 

 

 

 

 

 

복음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2

마태 25.14에는 그냥 사람”. 루카는 왕위를 노리는 귀족 한 사람”(=예수)으로 개작했다.

 

마태 25.14에서는 단순히 여행을 떠나면서”. 루카는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여 주권을 받은 다음 종말에 재림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개작했다. 그리고 12절은 이스라엘 전부를 통치하던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4년 사망하자 그 아들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려고 로마 황제를 찾아간 고사를 연상케 한다. 유다인들은 그를 싫어했기 때문에 황제에게 민간사절단을 파견하여 아르켈라오스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황제는 절충하여 아르켈라오스를 단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의 영주로 책봉했다. 아르켈라오스는 로마에서 이스라엘로 귀국한 다음 자기를 반대한 자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13

마태 25,15에는 종 세 명을 불렀다 하는데 이 숫자가 더 신빙성이 있다. 사실 루카 19.16.18.20에 보면 종 세명과 셈을 한다.

 

루카에서는 균등하게 한 종에게 한 미나씩을 맡긴다. 노동자의 일당이 한 데나리온, 백 데나리온이 한 미나다. 노동자의 일당을 칠천 원으로 계산한다면 한 미나는 칠십만 원인 셈이다. 마테오에서는 차등을 두어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준다”. 대체로 60미나가 한 달란트였으니만큼 요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란트는 사천이백만원, 두 달란트는 팔천사백만 원, 다섯 달란트는 무려 이억 일천만 원인 셈이다. 우선 액수가 터무니 없이 엄청나다. 그리고 차등을 두었다는 것은 마태오가 교회직무와 은사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개작한 것이리라.

 

14

루카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사실을 상기하여 아르켈라오스의 왕위 계승 고사를 도입했으리라.

 

15

그러나 그는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는은 루카의 가필. 역시 유다 고사를 연상케 한다.

 

17

주인이 왕위를 획득했기 때문에 종들에게 열 고을또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할 수 있다. 이는 루카의 개작이다. 마태 25.21에서는 주인이 종들더러 이렇게 말한다. “잘했다.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종아. 적은 것에 믿음직스러웠으니 내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 이것이 비유의 원형을 반영한다. 그 뜻인즉, 적은 돈을 잘 관리했으니 더 많은 돈을 맡기겠다라는 것이다.

 

25

25절의 항변은 루카복음에만 있다. 루카 자신이 매우 인간적인 항변을 가필했을 것이다. 25절은 시나이.바티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고, 베자. 워싱턴 사본에는 없다.

 

26

26절은 본디 비유와 무관한 단절어로서 전승과정중에 추가된 것이다. 같은 단절어가 마르 4.25(=마태 13.12=루카 8.18)에도 전해온다.

 

27

27절은 루카에만 있는 것으로, 루카가 아르켈라오스의 고사를 도입하는 기회에 덧붙인 것이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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