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16 조회수825 추천수7 반대(0)

예전에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콜로세움, 마추피추, 소피아 성당, 페트라, 공중정원와 같은 것들입니다. 저는 공중정원은 못 보았지만 다른 것들은 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건축물들입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놀라운 건축물입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무덤을 만들면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책입니다. 만리장성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는 성이 되었습니다. 콜로세움은 로마의 시민들을 위한 경기장입니다. 그곳에서 검투사들의 대결이 있었고, 신앙인들이 순교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마추피추는 산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놀라운 건축기술을 볼 수 있습니다. 소피아 성당은 지금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한 로마의 황제가 세운 동방교회의 성당입니다. 페트라는 신전인데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으로 나와서 유명해 졌습니다. 공중정원은 사막에 세워진 정원입니다. 기록은 있지만 유물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인류의 지성과 문화가 어우러져서 만든 건축물들입니다.

 

요즘 우리는 독서에서 요한 묵시록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묵시록은 다른 성경과는 달리 상징과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서 무서운 심판의 책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을 기다리는 책이 되기도 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사이비 종교들에 의해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요한 묵시록이 어떤 책이고, 쓰여진 목적은 무엇인지 한재호 신부님의 강의를 중심으로 함께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알려주신 계시’(묵시 1,1)가 요한묵시록인데, 그 계시의 내용이 마치 재앙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무서운 심판과도 같은 일들을 묘사하고 있고, 또 그 일들이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니 두려운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한묵시록은 축복의 책이기도 합니다. 요한묵시록 전체에서 행복합니다(makarios)’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요한묵시록의 저자는 이 책이 재앙의 책이 아니라 축복으로 가득한 행복의 책임을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맞서 대적하려는 이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심판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믿고 따르려는 마음만 있다면 요한묵시록을 두고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레사케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성경은 종말에 관해서 상징적으로 언급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성서학계에서는 밝혀냈다. 성경은 최종 미래를 미리 알고 알리는 점쟁이가 아니다. 종말에 관한 말은 시간상으로 역사의 종말에 관해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할 수 없다. 종말 언사는 현실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니, 곧 현재의 체험을 최종 미래에로 투사한 것이다.”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요한묵시록 역시 상징적인 여러 표현을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묵시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던져주는 의미가 상당히 큽니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듯 보이는 오늘날 세계 속에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유혹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무력하게 보이시는 하느님, 악이 자행되는 상황을 보고도 모른 체하시는 것만 같은 하느님을 항구하게 믿기란 쉽지 않습니다. 요한묵시록 안에 담긴 묵시주의적 메시지는 이런 우리에게 신앙의 새로운 눈과 결단력 있는 용기를 지니게 합니다.

 

요한 묵시록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세상을 살다 보면 하느님께서 무력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이다. 둘째,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관점과는 다르게 세상과 역사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지금 당장에는 고난과 죽음의 연속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상의 권력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고, 따라서 박해도 사라지게 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하느님께서 지니신 관점 안에서 세상과 역사를 보면 그분이야말로 참된 주권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때에 하느님께서는 이를 드러내실 것이고 그때가 바로 역사의 종말이 오는 때다. 물론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주권이 하느님께 있기에 현실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더 큰 통찰이 있을 때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묵시주의는 하느님의 관점으로, 역사의 마지막이라는 시점으로 현재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한 초대에 우리가 진지하게 임할 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적 자세를 보다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요한묵시록을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세상의 종말에 대해 정보를 일러주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는 신자들에게 머나먼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정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요한묵시록은 당시의 신자들에게 박해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며, 그 메시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점차 심해지는 박해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기 시작하고 신앙적인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신자들은 하느님이 도대체 계시는지,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보고만 계시는지 물음을 던졌던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팍스 크리스티아나)!’가 우리가 외쳐야 할 구호라고 전합니다. 그리하여 로마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께서 보여주신 희생적인 사랑에 순종하라고 권고합니다. 이러한 삶은 잠시 시련을 주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감수해야 할 테지만, 결국 하느님께서 최종적인 승리를 일으키시는 분임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친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요한묵시록이 당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메시지입니다.(더 자세한 것은 굿뉴스 성경자료실 요한묵시록 둘러보기를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있다면 세상의 종말도 우리를 하느님과 맺어진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있다면 지금 이곳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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