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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17 조회수516 추천수2 반대(0) 신고

221117.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며 우시며 말씀하셨다.”(루카 19,41)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마치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범죄를 두고 울었던 것처럼(1열왕 8,11), 예레미아가 유다의 유배를 두고 세 번이나 울었던 것처럼(예레 9,1;13,17;14,17) 우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두고 전에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루카 13,34)하시고 탄식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또한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 앞에서도 우신 적이 있습니다(요한 11,3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식을 올리셨습니다.”(히브 5,7)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우는 사람들!”(마태 5,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 하고 탄식하시며, 당신께서 우시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9,44)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지 못함에 대해 우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가슴이 미어지셨습니다.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지만, 그들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당신과 ‘당신이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해서, 세 번씩이나 예고(루카 19,43-44; 21,20-24; 23,28-31)하시고, 그것을 종말을 예시하는 역사적 심판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예수님의 울음과 말씀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적 경고요, 회개의 결단의 촉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당신의 눈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도 세상을 보고 울 줄을 알고, 아파할 줄을 알라는 것이요, 또한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으라는 말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2013년 람페두사 난민 방문미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함께 슬퍼하는 울음과 연민의 경험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무관심의 세계화는 우리에게서 우는 능력을 빼앗아갔습니다.
... 누가 울고 있습니까? 누가 오늘 이 세상에서 울고 있습니까?”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의 뜻을 외면하여, 또 다시 당신을 울리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드리고, 당신의 눈에 웃음을 꽃피워 드리게 하소서!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우시며”(루카 19,41)
 
주님!
도시를 보고, 세상을 보고,
비난할 줄은 알아도 울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의 아픔과 슬픔을 보고, 범죄와 불의를 보고,
울지도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무관심과 패배의식에 갇혀 당신의 뜻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안정과 편리를 도모하며 이기심과 타협 했습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에 눈물을 주소서.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울 수 있는 사랑의 눈물을 주소서. 

우는 이들과 함께 울며 당신의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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