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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의 전투와 권세 (묵시11:1-6)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19 조회수331 추천수0 반대(0) 신고

 

 

교회의 전투와 권세

 

(묵시11:1-6)

또 나는 지팡이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때 이런 말씀이 나에게 들려 왔습니다. '일어나서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 보아라. 2 그러나 성전의 바깥뜰은 내버려 두고 측량하지 말아라그것은 이방인들에게 내어 준 것이다그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나는 내 두 증인을 세우고 그들에게 베옷을 입혀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예언을 하게 하겠다.' 4 이 두 증인이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나무이며 두 등불입니다

그들을 해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그 글을 해치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이 죽고야 말 것입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기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을 권세를 가졌고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온갖 재앙으로 몇 번이든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이 세상을 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11장으로 넘어왔습니다지난번에 우리는 복음을 받아먹은 자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관해서 함께 확인을 했습니다무시무시한 나팔 재앙 속에서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하느님을 대적하여 살아가는데 복음을 받아먹은 어떤 무리가 회개를 하게 된다는 것이 10장의 내용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복음을 받아먹은 하느님의 백성들은 삶으로 입으로 그 하느님의 복음의 내용을 살아내야 하고 전파해야 하는데 우리가 삶으로 또 입으로 기쁘게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전파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쓰디쓴 길이라는 것 10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리고 11장으로 넘어 오게 됩니다그러니까 11장에서는 구체적으로 그 복음을 받은 자들의 삶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금부터 한 절 한 절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묵시11:1-2) 1 또 나는 지팡이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때 이런 말씀이 나에게 들려 왔습니다. '일어나서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 보아라. 2 그러나 성전의 바깥뜰은 내버려 두고 측량하지 말아라그것은 이방인들에게 내어 준 것이다그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예언 사역을 위탁받은 요한에게 성전 측량의 명령이 떨어집니다그에게 지팡이 같은 칼라모스가 주어집니다칼라모스는 당시 사람들이 쓰던 길이를 재는 자였습니다. 3m(10feet)정도 되는 갈대입니다에제키엘서에 보면 에제키엘도 똑같이 성전 측량의 명령을 받고 장대로 성전을 측량하는 장면이 에제키엘서 40장에 나오지요한번 보고 가지요.

 

(예제40:14-15) 14 그가 현관을 재니 이십 척 나비였고 마당으로 쑥 나가 있었다. 15 그 문 바깥쪽에서 문간 안쪽까지는 오십 척이었다.

 

여기서 쓰인 장대 카네 장대입니다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대와 똑같은 단어입니다그런데 왜 갑자기 예언 사역의 위탁이 일어난 후에 성전 측량이 나오는가그 것은 당시에 어떤 경우에 성전을 측량했는지를 알면왜 요한에게 이러한 명령이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겠죠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두 경우에 성전을 척량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파괴를 위한 측량(척량)입니다어떤 건물이나 구조물을 파괴해 버릴 때 척량을 했고 두 번째는 바깥 것들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울타리를 쌓는 개념으로의 척량이 있었습니다(파괴 혹은 보호)

 이 개념을 머릿속에 잘 두시고 다음 구절을 보세요.

무엇을 척량하라고 합니까하느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이 요한묵시록이 기록된 때가 AD95년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의 성전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AD70년에 로마의 타이터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요한에게 척량하라고 하는 성전과 제단은 실제의 성전이 아니죠그럼 뭘까요하늘의 성전바로 교회하느님의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성전을 척량하라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척량하라는 구절의 의미는이제 그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복음을 삶으로 입으로 전하고 그 복음의 내용을 직접 살아내 게 될 텐데 그 삶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대적들이 있고 그 대적들은 그들을 실패케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그러나 내가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지키고 보호 하겠다‘ 는 하느님의 의지 의 표현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 뒤 구절을 보면 성전 밖 마당은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그러시죠?

이스라엘의 성전은 맨 바깥에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그 다음에 여인의 뜰이스라엘의 뜰제사장의 뜰성소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그리고 그 성소로 들어가는 문이 열 개 있었습니다그 중에서 맨 바깥의 이방인의 뜰을 성전 바깥뜰이라고 했고 나머지 부분을 성전 안 뜰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바깥뜰에서 이방인들이 안 뜰로 넘어 들어오게 되면 즉시 사형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오늘 본문의 성전 밖 마당을 예수를 믿지 않는 죄인들로 해석을 합니다옳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역사를 통과하며 살아가는 하느님의 백성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보호하시지만 죄인들은 심판과 저주에 그대로 노출시켜 버리신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그렇게 해석을 해도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측량의 대상이 되는 성전 안마당즉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입게 되는 것을 성도들의 내적이며 감추어진 실체로 보고, 측량 대상에서 제외된 성전 바깥마당을 성도들의 외적 문제외적 경험으로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의 영적인 부분그들의 신분과 궁극적 운명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지만 그들의 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방인들이 그들을 밟게 놔두신다는 것이죠그리고 그 기간은 42달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11 1절과 2절이 아주 매끄럽게 풀어지는 것 같습니다왜냐하면 2절 후반부에 보면 이방인들에게 내어 준 그 성전 바깥마당을 이방인들이 짓밟는데그것을 그들이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는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전 바깥마당도 우리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교회의 외적인 삶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11장 전체의 서론으로 훨씬 더 잘 어울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2절의 그 성전 바깥마당을 42달 동안 이방인들에게 주었다는 구절의  내버려 두고’ 헬라어 에도떼는 시제가 부정과거 수동태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스스로 성전 밖 마당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그 짓밟힘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전투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곱 재앙을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확인 한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재앙과 저주 속에 노출 되도록 허락을 하십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백성들은 그 속에서 정금 같이 단련이 되는 것이죠성도의 삶에 일어나는 전투는 성도의 거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 에도떼’ 이방인들에게 성도들을 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가 7장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의 상징적 숫자인 144,000에 대해서 공부할 때 왜 요한이 민수기의 계수 장면을 인용 해다가 각 지파 별로 숫자를 맞추었다고 했습니까민수기의 인구 계수 장면은 전쟁에 나가서 싸울 수 있는 군사를 계수하는 장면이라고 했지요그래서 그 장면을 인용 해다가 우리 교회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전투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한 문학적 인용이라고 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분명 묵시록 20장에 가면 사탄과 그 마귀의 세력을 누가 물리치느냐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모두 불 살라 버립니다그러면 결국 전쟁은 누구 것이라는 것입니까하느님의 전쟁입니다그리고 하느님이 승리하실 것입니다그런데 왜 우리보고 이 땅에서 싸우라고 하십니까어차피 당신께서 다 하실 거면서...

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셔놓고 그들에게 전쟁을 시킵니까그들이 전쟁에 지면 못 가지게 하십니다하느님이 이미 주신 가나 안 땅을 칼과 창을 들고 나가 싸워서 조금씩 조금씩 빼앗아야 합니다

가끔은 그 전쟁에서 치명상을 입고 고통을 당하기도 해야 합니다왜 그렇게 하시죠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승리의 영광에 우리를 동참시켜 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어차피 승리하실 하느님의 전투에 우리를 동참시켜 주심으로 해서 그 영광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크심과 위대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배우고 우리의 작고 보잘것없음과 부패함과 더러움을 깨달아서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발동해서 우리 자신을 의지하던 삶에서 전적으로 하느님께 우리를 의탁하게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고통속에 재앙 속에 그대로 노출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그 분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죠그게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우리는 거기로 가는 것입니다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전투를 통해서 우리의 거룩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시간은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42이것을 연수로 환산하면 3년반이죠날 수로 계산하면 1260일입니다그리고 때로는 사흘반으로도 표현하기도 합니다 42달 삼 년 반한때 두 때 반 때는 교회시대를 나타내는 기간이지요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고 넘어가죠.

 

(다니9:24-27) 24 하느님께서는 정하신 기간이 칠십 주간이 지나야 네 겨레와 네 거룩한 도읍으로 하여금 다시는 거역하지 않게 하시고 죄악에서 손을 떼게 하실 것이다죄를 벗겨 주시고 영원한 정의를 펴실 것이다환상으로 내리신 예언을 틀림없이 이루시어 더없이 거룩한 이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성별하여 세우실 것이다. 25 너는 똑똑히 알아라너희가 돌아 가 예루살렘을 재건하리라는 말씀이 계신 때부터 기름부어 세운 영도자가 오기까지는 칠 주간이 흐를 것이다그 뒤에 육십 이 주간 어려운 시대가 계속되겠지만그 동안에 성을 쌓고 재건하게 될 것이다. 26 이렇게 육십 이 주간이 지난 다음기름부어 세운 이가 재판도 받지 않고 암살당하며도읍과 성소는 한 장군이 이끄는 침략군에게 헐릴 것이다전쟁으로 끝장이 나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종말이 홍수처럼 닥쳐 올 것이다. 27 그 장군은 한 주간 동안 무리를 모아 날뛸 것이다반 주간이 지나면 희생 제사와 곡식 예물 봉헌을 중지시키고 성소 한 쪽에 파괴자의 우상을 세울 것이다그러나 결국 그 파괴자도 예정된 벌을 받고 말리라.'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의 종말즉 영원한 하느님 나라가 오는 시기를 70주간(이레)으로 기한을 정하신 것입니다그 칠십 이레가 가면 이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 왕 때 성전을 재건하라 명령하셨습니다그 때로부터 성전이 재건 될 때까지가 일곱이레요 기름 부은 왕이 오실 때까지가 62이레입니다그럼 7더하기 62하면 얼마입니까? 69이레지요. 그럼 세상의 종말까지 얼마나 남은 것입니까한 이레 남았습니다. ‘이레라는 것은 뭐지요하루이틀사흘~~..7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문자 적으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7년으로 잡아서 다리오 왕 원년서부터 70이레 즉490년 후에 이 세상의 종말이 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그런데 490년이 지난지 오래인데도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지요그래서 그들은 남은 한 이레 7년을 뒤로 뺀 것입니다.

 세대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 지구의 종말에 있을 7년 대환난은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그래서  7년이 지나면 종말이 온다하느님 왕국이 임 한다‘ 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여러분, 7년 대환난이라는 것은 없습니다물론 대 환난의 시기는 있지요바로 지금이 그 대 환난의 시기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너무 호락호락하게 보면 안 됩니다여러분은 지금 성경이 말씀하고 계신 대 환난의 시대를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27절을 다시 한 번 보세요.

반 주간이 지나면 희생 제사와 곡식 예물 봉헌을 중지시키고 마지막 한 이레 7이 남았지요그런데 그 한 이레의 절반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고 합니다제사와 예물이 금지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성전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제사와 예물을 갖다 바치던 성전이 언제 파괴됩니까AD70년 로마의 타이터스에 의해 성전이 파괴됩니다이제 그 때부터 종말까지 몇 이레가 남았습니까반 주간(이레)가 남았지요반 주간은 얼마입니까3과 2분의1,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를 우리는 교회시대은혜의 시대, 3 년반한때 두때 반때, 126042개월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록이나 묵시문학에 자주 나오는 숫자들이지요그 숫자들이 바로 우리 교회시대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교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교회시대 전체를 통해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인생 내내 대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고통을 겪게 됩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42달 동안 우리에게 권세를 허락하신 답니다그러한 환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는다른 말로 삶으로 입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3절입니다.

 

(묵시11:3) 3 나는 내 두 증인을 세우고 그들에게 베옷을 입혀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예언을 하게 하겠다.'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교회 시대우리의 일생동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십니다여기서 두 증인은 교회를 말합니다어떻게 그 두 증인이 교회인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4절을 보면 그 두 증인이 두 올리브나무이며 두 등불라고 나오죠?

 

(묵시11:4) 4 이 두 증인이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나무이며 두 등불입니다.

 

이 두 올리브나무와 두 등불은 어디서 인용이 된 단어들입니까즈가리아서죠.

 

(즈가4:1-14) 1 나와 말을 하던 그 천사가 돌아 와서 나를 흔들어 깨웠다잠이 덜 깬 사람처럼 얼떨떨해 하는 나에게, 2 그가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나는 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보인다고 대답하였다그 등잔대 꼭대기엔 그릇이 하나 있고그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심지 주둥이가 하나씩 뚫린 등잔 일곱 개가 붙어 있었다. 3 그리고올리브나무 두 그루가 등잔대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었다. 4 나는 나와 말하던 그 천사에게 '나리이것들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5 나와 말하던 그 천사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느냐?' 하고 되물었다내가 모르겠다고 하자, 6 그 천사가 나에게 일러 주었다이것은 야훼께서 즈루빠벨이 할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권세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 내 영을 받아야 될 일이다.' 만군의 야훼께서 하신 말씀시이다. 7 '산아네 아무리 크다 하여도 즈루빠벨 앞에서는 평지에 지나지 않는다그가 산에서 머릿돌을 떼어 올 때사람들은 '멋지다멋지다.' 하며 환성을 올리리라.' 8 야훼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9 '즈루빠벨이 제 손으로 이 집에 주춧돌을 놓았으니그가 손수 그 일을 이루리라그제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가 만군의 야훼이심을 너희가 알리라. 10 일이 자잘하게 시작되어 사람들이 빈정거렸지만즈루빠벨이 골라 놓은 돌을 보고는 그 사람들도 기뻐할 것이다이 일곱 등잔은 천하를 살피는 야훼의 눈이다.' 11 나는 그 천사에게 '그러면 등잔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올리브나무 두 그루는 무엇입니까? 12 금대롱으로 기름을 대어 주는 올리브나무 가지가 둘 있는데그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13 그 천사가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느냐고 하기에 내가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14 그는 이렇게 일러 주었다. '올리브나무 두 그루는 온 세상의 주를 모시도록 기름부어 성별한 두 사람을 뜻한다.'

 

여기 보면 일곱 등잔대와 두 올리브나무가 나옵니다우리가 묵시록 1 20절을 공부할 때 일곱 등잔대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묵시1:20) 20 네가 보는 내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황금등경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고 일곱 등경은 곧 일곱 교회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일곱 등경이 아니라 두 등경이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라고 했습니다그래서 일곱 등경은 전체로서의 교회를 나타내는 것이고 두 등경은 증거의 역할을 맡고 있는 교회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숫자입니다둘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전통적으로 증거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되는 숫자입니다.

 

(신명17:6) 6 그런데 그 사람을 죽이려면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죽일 수 없다.

 

(신명19:15) 15 어떤 나쁜 짓이든 어떤 잘못이든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증언이 성립되지 않는다어떤 잘못을 저질렀든지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고소할 수 있다.

 

이렇게 그 증거가 진실 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숫자가 둘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 하실 때 둘씩 보내십니다.

 

(마르6:7) 7 열 두 제자를 불러 더러운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이렇게 두 등경이라는 것은 복음 증거자로서의 교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그리고 즈가리야서에서 두 올리브나무는 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즈룹바벨과 대 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까 교회는 왕이요 제사장의 권세를 소유한 자들 ,왕 같은 제사장의 권세를 갖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그래서 5 6절에 보면 교회의 엄청난 영적 권세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묵시11:5) 그들을 해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그 글을 해치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이 죽고야 말 것입니다.

 

교회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들을 소멸한다고 합니다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불이 뭘까요논리 정연한 지식불같은 욕원수들을 막 욕해서 소멸시키나요?

 

(예레 5:14) 14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나 야훼는 만군의 하느님으로서 선언한다. '저들이 이런 말을 지껄이므로나는 너의 입에 불같은 말을 담아 준다그 말은 이 백성을 섶처럼 살라 버릴 것이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불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그 말씀으로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교회가 하늘을 닫아서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묵시11:6)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기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을 권세를 가졌고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온갖 재앙으로 몇 번이든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이 세상을 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어디서 인용된 구절입니까엘리야의 이야기와 모세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입니다아합 왕 때 엘리야가 삼년 반 동안 비를 막아버리지요그리고 모세가 출애굽 할 때 강을 피로 변하게 하고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지요?

왜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 교회에게 주어지는 권세를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를 인용해서 기술을 하냐면교회는 강력한 이방 통치자로 상징되는 사탄과 그 사탄의 세력들의 종교와 적대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 파라오와 파라오의 마술사들과 대치했고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는 아합 왕과 그의 부인 이세벨과 그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들과 대치했습니다구약에서 이 두 사건은 하느님의 사람들과 사탄의 세력과의 적대관계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그 악의 세력과 대적하여 그 세력과 싸워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우리는 원래 그 악의 세력의 노예였던 자들입니다그 악의 세력이 시키는 대로 즐거이 그 일을 행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거기서 꺼내셨습니다그러더니 우리에게 그 세력과 싸울 수 있는 무장을 시키셨습니다어떻게요하느님의 전신갑주(갑옷과 투구)그리고 우리를 군사로 부르셨습니다그리고 싸우게 하셨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그 권세를 받은 자로서 어떻게 싸워야 하지요정말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태워 죽이나요정말 하늘을 닫아서 죄인들의 풍요를 막아버릴 수 있나요정말 강을 피로 만드는 것과 같은 기적적인 능력으로 악한 세력과 싸우게 되나요우리는 어떻게 싸웁니까사랑하고 용서하며 겸손하고 인내하는 모습으로 악과 싸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전에는 전혀 가질 수 없었던 그러한 하느님 나라 백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성품으로 세상과 싸웁니다그래서 3절에 그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굵은 베옷은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참회할 때 입던 옷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일생동안 우리의 더러운 죄와 싸우는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회개의 결과로 우리에게 맺혀지는 열매가 뭡니까사랑이요 기쁨이요 평화요 온유요 인내요 절제 아닙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그러한 회개와 참회의 삶을 경주해야하고 세상을 향해서도 그러한 회개의 삶을 살도록 외쳐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세상은 절대 힘으로 정복되지 않습니다이솝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는 것은 강한 추위도 바람도 아닙니다따뜻한 햇빛이 나그네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싸움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마태복음에 나오는 너희가 천국의 열쇠를 소유하고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는 말은 우리가 천국의 문지기가 되어서 우리가 허락하면 구원을 받고 우리가 거절하면 구원이 취소되고 하는 권세를 갖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이 땅의 교회의 특성과 하느님 나라의 운용 특성이 같다는 것을 말 해 주는 것입니다하느님 나라를 경영하는 자들이 바로 교회이고 하느님 나라는 바로 교회가 하느님의 통치 아래 사는 곳이니까 교회는 이 땅에서도 그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와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 구절의 진의입니다.

 여기서 매는 것이 하늘에서도 매이고 여기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것입니다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가 뭡니까사랑우리가 갖고 있는 권세는 사랑할 수 있는 권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오해하면 안 됩니다우리가 가진 권세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세상을 즈려밟고 승전가를 부르는 권세가 아닙니다교회는 성공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닙니다교회는 성공이 아니라 충성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입니다성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충성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힘써 쫓아가는 것을 충성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권세는 물리적인 파워가 아닌 것입니다오히려 세상에게 밟히고도 그들을 용서하고 인내하고 온유함과 겸손함과 심지어 사랑함으로 대할 수 있는 세상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그런 권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살인과 거짓을 의도하고 우리에게 공격을 가합니다우리는 그 세상의 공격에 사랑이라는 칼을 집어 들고 싸우는 것입니다온유와 겸손이라는 창을 집어 드는 것입니다그게 이 땅에서의 성도들의 전투입니다.

하느님은 성도들에게 그러한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하느님께 능력을 받고 하느님의 원수들과 대적하여 그들을 박살 낸 것처럼 지금 우리도 하느님께 권세를 받고 사랑과 용서와 겸손과 인내로 우리의 대적을 박살내는 전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바깥마당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참 된 우리의 실존은 하느님의 보호 아래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그게 신자의 전투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 아니었습니까세상에 가장 바보 같은 누명을 쓰고 가장 약한 모습으로 가셨지만 인류 역사상 그보다 더 큰 승리가 없었듯이 우리도 바로 그러한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여러분정말 승리하고 싶으십니까용서하십시오사랑하십시오정말 이기고 싶으세요인내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요그래서 하느님께서 권세(엑수시아)를 주신 것입니다그 권세를 사용하세요여러분에게는 그렇게 사실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죄를 안 지을 수 있는 권세그 권세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이기세요

 

우리는 분명 42달 동안 짓밟힌다고 했습니다우리 인생 내내 세상으로 부터 당하게 되어있다는 것이지요하지만 그렇게 외적으로 짓밟혀 주는 모습이 1260일 동안 권세를 받고 세상을 이기는 모습이라는 이 역설이 여러분에게 이해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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